신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 후의 일이다.
학교생활을 늘 상쾌하고 발랄하게 하는 ○진이가 교무실에 찾아와서는 “선생님, 저 방과후 학교와 풍물을 며칠 빠지면 안 돼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의례적으로 “당연히 안 되지!”라고 즉답했다. 그런데 ○진이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왜요?”라고 당차게 묻는다. “왜라니?”라는 나의 말에 ○진이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유인 즉슨, 방학 때 청주에 있는 언니네 집에 가서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즐겁게 보낼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이 무산되게 되자 갑자기 서글픔이 몰려왔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도는 “방학이 방학이 아니잖아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라는 ○진이의 말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서둘러 모양새 좋게 억지춘향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아직도 그 미안함 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우리 학교만의 풍경이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 학교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광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과연 현재의 이러한 현상들이 아이들을 참되고 바르게 성장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참으로 암담할 따름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방학은 어떠한 의미일까? 물론 방학의 의미는 각자 사고방식에 의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 의미의 방학은 부족한 공부를 보충할 수 있는 호기로 여길 수도 있고, 각박하고 메마른 이 시대를 생각해 본다면 감성을 높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 특성에 맞게 각자 맞춤식 방학을 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여름방학은 너무도 획일적이며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그저 학력이라는 미명하에 아이들을 답답하기만 한 교실에 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아이들의 특성과 사회를 고려해볼 때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바람직할까? 컴퓨터와 휴대폰 등 지나치게 기계에 의존적인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NQ(Network Quotient), EQ(Emo- tional Quotient) 또는 SQ(Social Quotient)를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친구 또는 가족들과 운동하기, 등산로 함께 걷기, 계곡 물놀이, 바닷가 조개잡기나 시냇가에서 가재잡기, 친척집 방문하기 등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을 권장한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는 서울 나들이, 문화답사, 연극 또는 문화행사 참가하기 등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아이들은 심신이 건강하면서도 평소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해맑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시대는 다변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필요로 하는 인재도 다양하다. 학력이라는 굴레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정형화된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글로벌 시대의 창의적이면서도 감수성을 지닌 인재를 기대한다면 이제 용기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그 순수해야만 할 시기에 방학 내내 학교에 잡아둔다고, 학원으로 내몬다 해서 진짜 실력이 향상된다고 어느 누가 믿겠는가? 좀 더 자유롭고 신나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더욱 당당하고 씩씩하게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참되고 올곧게 성장하기는 기대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정신을 반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의 한 사람이자 교사로서 너희들에게 진정 사과하고자 한다.
“얘들아, 미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