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2시가 가까워 오자 송악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이모”하고 개선장군처럼 들어선다. 반갑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이선영(47)씨. 학원차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 달려 온 학생들이 호들갑스레 주문을 하고 동전을 거슬러 가느라 한바탕 전쟁이다. 순대의 부속인 허파며 간이며 요런 것들은 누가누가 좋아하는지 눈여겨 봐 두었다가 꼭 챙겨주는 것은 기본이다. 누나를 기다린다며 떡볶이를 들고 앉은 준호(송악초 3년)는 거스름돈에서 100원을 이모에게 내밀며 “저번에 100원 싸게 해 주신 거요” 하며 외상값을 갚는 철저함까지 보였다. “밀알분식 이모가 이쁘냐” 물었더니 “아니요. 근데 잘난 척 안 해요” 준호가 솔직하다. 송악초등학교 앞 밀알분식을 맡아서 한 지 4년 차에 접어든다는 선영 씨는 아이들이 변하는 거 보는 기쁨이 커서 목돈이 안 돼도 뿌듯하고 할 만하단다.
스란(송악초 4년)이가 “이모는 불량식품이랑 안 어울려”하며 이모의 어깨를 세워주었다길래 둘러 봤더니 불량 과자류가 어디에도 없다. 버스로 통학하는 학생들에겐 주문 받기 전에 버스비가 있는지 꼭 물어 본다. 어른손님을 받다보면 학생들에게 소홀해져서 학생손님위주로만 받는다는데, 밖에 가면 만원 헐어도 쓸 것이 없는데 여기만 오면 부자가 된다며 이따금 들르시는 월곡리 할아버지. 넉넉지 않은 앞치마 주머니를 만지작거릴라치면 오셔서 “애기야 살 만 하냐”시며 마음이 부자인 게 진짜 부자라며 순대 천원어치 시켜놓고 일장훈계를 하고 가신다. 나머지 공부를 하고 오는 학생들도 이모 앞에서는 퍽 당당하여 영어로 순대를 주문 하길래 영어실력을 칭찬해 주었더니 부쩍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는 걸 보았다며 이것 또한 기쁨이란다. 돌아보면 “내 자식들은 이렇게 못 키웠다”며 지난날을 가만히 넘겨보다 눈시울이 젖을라 치는데 5학년 여학생들 한 무리가 들어와서 애살스런 말투로 마음을 잡아끈다. 선영 씨가 활짝 웃는다. 밀알분식 이모가 주는 보너스를 누구라도 한번 씩은 받을 수 있다는데 이를테면 시험에 100점을 받았다든가, 대회 나가서 입상을 했다든가, 오늘이 생일이라면 말이다. 처음에는 복잡한 시간에 선영씨가 못 보는 사이 값을 내지 않고 가는 학생들이 간혹 있었단다. “그 때 못 본 척 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었더니 지금 너무 달라진 모습으로 학년이 올라가는 걸 볼 때 보람된다”는 이선영 씨.
고구마 아홉 개를 이모에게 가져다주겠다는 학생과 오백 원을 외상으로 달고 간 학생하며 사백 원에 맞추어 떡볶이를 담아주어 늘 백 원만큼 사랑의 빚 진 학생들이 꼭 꼭 들리는 밀알분식은 방학 때만 빼고 항상 문을 연다.
선영 씨는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깨끗이 인정하면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라며 “어른에게 하듯 그렇게 인정하고 인정해 줄 때 학생들이 속내를 보이며 안겨오지요. 밀알분식을 들고나는 모든 학생들이 격려의 힘으로 맘껏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학교 앞에서 문구사를 했는데 장사가 잘 되어 모든 학생이 돈으로 보였다가 자세히 보니 붐비는 시간에 훔치는 학생을 발견하게 된 후로는 모두 도둑으로 보여서 결국 그만 두었다는데 선영 씨는 학생들이 꽃으로 보이는 데 까지 이른 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