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사람
동네선배 살해 암매장 피의자 4명 검거
9년전 우발적 범행, 양심가책 유모씨 자수로
피해자 양씨가족, 집앞 야산에 묻힌 줄 모르고
‘멀리서라도 살아만 있어라’ 9년간 기다려
피의자 모두 죄책감 시달리다 7월1일 검거돼
9년만에 유골되어 돌아온 아들
1990년 가을 저녁 담배 한가치 빼물며 나간 아들 춘명(당시 23세)이가 9년만에 앙상한 유골로 돌아왔다.
신평면 금천리에 사는 어머니 최양순(64세)씨는 9년전 그날이 바로 아들녀석이 군대를 제대한지 보름째 되던 날이었음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다. 제대기념으로 큰형으로부터 새옷 한벌 선물받고, 새 시계를 차고나간 그는 “이제는 돈벌어서 엄마 호강시켜줄께” 하던 약속만 남기고 그길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도 막내아들은 담배 산다는 말에 어머니가 1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내밀자 담배 딱 한갑을 사고는 잔돈은 고스란히 엄마 손위에 털어놓고 나갔다.
이렇듯 생생한 기억을 마지막으로 아들의 소식은 감감이었다. 행방불명자 신고를 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밤이나 낮이나, 특히 명절때라도 되면 이 아들이 꼭 오늘은 돌아올 것 같아서 애닳으며 기다린지 9년이었다.
“나중엔, 아무리 험한 바닥에 살아도, 혹시라도 죄를 지었걸랑은 암만 고달퍼도 목숨만은 살어있어라 했어요.”
그런 아들이 벌써 9년전에 죽어 있었다니. 그것도 큰아들네 드나들 때 허구헌날 지나다니는 곳에, 집 2층에만 올라서면 빤히 보이는 야산 위에... 마대자루에 묶여서... 매장되어 있었다니.
7월2일, 9년전에 아들을 죽였다는 젊은 애들 넷이 경찰과 함께 현장검증이라고 나왔다. 9년만에 아들의 모습을 보고난 어머니 최씨는 그날부터 식당문도 닫아걸고 일어날 줄 모른다.
선배 몽둥이 찜질 두려워 살인공모
당진경찰서는 7월1일, 경기도 고양시에 주소를 둔 이혜인(만 27세, 남)씨 등 4명을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9년전인 1990년 10월20일 밤, 신평면 금천리 영다방 뒤편 마을다리 위에서 이 동네선배인 양춘명(당시 23세)씨를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암매장하고 달아났다가 9년만에 검거됐다.
이날 검거된 피의자는 이혜인씨와 이영식(만 26세)·송희경(만 26세)·이순모(만 26세)씨 등이다.
다음은 당진경찰서에서 공개한 이 사건의 개요다.
1990년 당시 전문대 1학년생이던 이혜인과 이영식(당시 ㄷ상고 3학년), 송희경(당시 ㄷ상고 1학년), 이순모(〃 3학년) 등 피의자 4명과 참고인 등 6명은 10월20일 새벽 1시20분경, 사건장소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이곳에 피해자 양춘명씨가 술을 마시고 나타난다. 양씨는 이들에게 “어린 놈들이 동네에서 술을 먹고 떠든다”며 무릎을 꿇게 한 후 주먹과 발로 여러차례 때리고 이혜인·이영식에게 몽둥이를 가져오라고 시킨다. 두 피의자는 몽둥이를 가지러 가면서 자신들이 죽도록 맞을 것을 우려, 양씨를 죽이기로 공모하고 근처에서 1m길이의 몽둥이를, 3백미터 떨어진 이혜인의 집에서 씽크대에 있던 부엌칼을 각각 가지고 현장으로 간다.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다른 피의자와 참고인을 구타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이혜인은 몽둥이로 피해자의 뒤통수를 때려 쓰러뜨리고 피의자 4명은 일제히 피해자에게 달려들어 발로 차고 이혜인·이영식은 목을 조른다. 이영식은 칼로 피해자의 우측 팔뚝을 한차례 찌른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숨을 거둔다.
이들은 곧바로 사체를 150m 떨어진 야산 꼭대기 방공호에 밀어넣고 나뭇가지 등으로 은폐했다가 발각될 것을 우려해 다시 암매장하기로 하고 이날밤 10시경 마대자루에 사체를 넣어 60㎝ 깊이의 땅을 파 사체를 유기했다.
사체유기 가담자 죽는 등 불상사 겹쳐
9년전 아무 목격자도 없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은 최근 한사람이 당진경찰서 형사계에 자수하면서 전모가 밝혀지게 됐다.
당시 현장에 함께 있다가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자리를 피했던 유재석(가명, 26세)씨. 유씨는 다음날 피의자들과 함께 사체유기에 가담했으나 그뒤 내내 심리적인 압박감과 악몽, 죄의식에 시달려왔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그러다 유씨는 문득 자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6월29일 저녁 경찰서를 찾은 것. 그러나 사체유기에 관한 유씨의 혐의는 공소시효 5년이 이미 지나있는 상태였다.
유씨의 자수에 따라 피의자들의 신원을 확보한 경찰은 경기도와 서울 등에 흩어져 사는 피의자들을 상대로 수사해 별다른 저항없이 범행일체를 자백 받았다. 피의자들은 대부분 우발적으로 저지른 이 사건에 대해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것이 유씨와 함께 사건현장을 일찍 떴다가 사체유기에 가담했던 안현균(가명)씨는 중기기사로 일하던 지난 97년, 덤프트럭에 포크레인을 싣다가 차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불의에 사망했다. 또 송희경씨는 농협에 근무하던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무릎을 다쳐 1년간 휴직하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이런 불상사들이 더욱 이들의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중시켰다.
문제는 남아있는 가족들이다. 9년전의 사건을 알 리 없는 피의자의 가족들. 더구나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둔 이영식씨의 경우는 가족들이 치러야 할 댓가가 너무 커보인다. 더구나 피의자 이혜인씨 부모는 피해자 양씨 집에서 불과 수백미터 거리에 살며 낯을 부딪쳐야 하는 처지.
하지만 피해자 양씨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야속할지 모르지만 죄의 댓가는 치렀으면 좋겄어요. 허지만 모든 부모가 자식 잘되길 바라지, 부모가 무슨 죄가 있겄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