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지휘봉이 가리키는 곳을 읽기가 바쁘다. “곡, 곡식할 때 곡이죠? 구에 기역이 붙으면 무슨 발음이 되나요?”

할머니들이 모이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진행되는 이 수업시간은 한글공부 시간. 잘 아는 받침 있는 글자가 나오면 큰소리로, 잘 모르는 글자는 저마다 말하는 글자가 다르거나 목소리가 작아진다.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호원노인대학을 다니다가 한글을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임종국 전 당진교육장이 무료로 자리를 마련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당진문화원에 부탁해 2층의 작은 교실을 얻었다고 한다.

읽기가 끝나니 할머니들은 곧이어 칸이 그려진 종이에 칸마다 쓰여진 글씨를 소리내어 읽으며 쓰기 시작했다. 오늘 배운 한글 낱말들도 쓰여 있었다. 제 키에서 반 이상 내어준 연필을 들고 지우개로 지워가며 또박또박 글씨를 참 예쁘게도 쓰신다. ‘여보슈, 토하지마, 누나도, 지나다’ 단어가 서로 연결되지 않아 재밌기만 한 문장 하나하나 써내려가는 모습은 진지하기만 했다.

임종국 지도교사는 “아직은 받침있는 글자를 잘 읽지 못하셔서 받침 없는 글자로 단어를 만들어 냈어요. 그래서 그냥 보기에는 웃기기도 하지만 글자 하나하나를 배울 때도 실생활에서 금방 쓸 수 있도록 교재도 내가 만들고 했지요. 교과서가 없으니 진도도 내 마음인데 잘하시는 날은 더 알려드리기도 하고 진도가 더디면 한번 쉬었다 가고요.”

임 지도교사는 학생들의 이름을 꼭 불러준다. 자식 이름, 어멈 등으로 불리던 어머니도 학생이니 이름 뒤에 학생이라는 단어를 꼭 붙여 불러준다고 했다.

한글교실에 최고령자는 75세 김옥희(신평면 신당리) 할머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다”며 “지금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를 연발하신다.

“열심히 해야 하는데 금방 까먹고 하니까 걱정이 앞서죠. 그래도 빨리 더 배워서 간판 글씨도 읽고 운전면허도 따고 싶어요. 우리 동네는 버스가 얼마 없어서 한글공부 하러 올 때나 나갈 때 얼마나 불편한데... 운전면허 뿐이야,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별거별거 다하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김동화(71) 할머니는 글씨 연습하는 종이를 들여다보니 또박또박 쓴 글씨가 참 예쁜데 부끄러워 하며 손바닥으로 다 가려버리신다.

“신문에 나도 나와요? 챙피해 죽겠네. 나는 정말 글자 하나도 몰랐어요. (김옥희 할머니가) 가자고 해서 다니는데 재밌는거에요. 연속극도 다 끊어버리고 글씨공부를 밤에도 해요.”

임 지도교사는 “어머니들한테 연속극은 낙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런데 드라마까지 끊고 공부를 한다는 게 쉬운게 아니죠.”

할머니들은 집안일, 자식일도 훌훌 털어내기도 한다.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이니 서로가 서로를 아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최희남(대호지면 두산리, 73) 할머니는 어린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한 한을 풀고 있다고 했다.

“10년 전에 할아버지(남편)를 먼저 보냈으니까 혼자 살면서 어려움이 진짜 많았죠. 누가 알려주나. 그래서 더 열심히 배워요. 우리 동네도 오지라 버스가 별로 없는데 수업시간은 맞아서 다행이지.”

한 동네에 산다는 박영금(68) 할머니는 “같은 동네 사람과 배우면서 물어보기도 하고 모르는 것은 알려주기도 하고 좋아요. 엄마가 한글 배운다고 했더니 딸이 연필이랑 공책도 사주고 선생님은 종이다 뭐다 다 공짜로 주셔서 미안하죠.”

구자운(당진읍 수청리, 70) 할머니는 “친정아버지가 학교 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안 보냈는데 지금이라도 배우니 재미나. 왜 이제야 한글을 배우냐고 하는데 살림하고 농사짓고 애들키우다 보면 이렇게 시간 금방가지요. 그래도 지금이라도 배우잖아요.”

할머니들과 임 지도교사는 한글공부와 동시에 약속을 한 가지 했다. 수업을 한지 1년이 지나 내년 7월이 되면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해주겠노라고. 할머니들은 저마다 “잘해야 하는데 할 수 있으려나” 걱정부터 앞선다고. 그래도 더 어렵다는 자식농사도 잘 지으셨는데 한글 공부가 그보다 더 어려우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