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년동안 이만재(49세)씨는 동네곳곳의 쓰레기, 논, 밭두렁의 폐비닐, 농약병 치우는 일을 한 번도 거른 일이 없었다.
그것도 그냥 치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비니루, 상자, 큰병, 작은병, 농약병등을 세밀히 분리해서 다시 쓸만한 물건들이 있으면 동네 곳곳에 나누어 주었다.
기름집에서 쓸만한 큰 병은 기름집에 갖다주고, 작은병이 필요한 집에는 작은병을 갖다주고... 남은 것들은 가득가득 모았다가 면사무소에 전화해 실어가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헌 자기, 밥상따위의 민속적인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깨끗이 닦아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갖다주기도 했다. -중략-
돌아오면서 우리는 ‘환경운동’이라고 쉽게 내뱉어온 추상적인 단어가 왠지 쑥쓰러웠다.
환경운동은 거창한 구호도 아니고, 양심을 걸어야 하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끼고 절약하는 상식적이고 건전한 생활일 뿐이었다.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너무나도 허황한 소비문화에 빠져 상식적인 생활범주에서 멀어도 아주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마구 쓰고, 마구 버리고, 그리고 이제 와서 그 엄청난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만재씨의 위대한 점은 ‘한결같이 아끼는 마음’을 20년동안이나 지켜오면서 이 소박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몸으로 깨우쳐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3년12월13일자 3호 기사 발췌>
이만재 씨의 아내가 운영하는 고대면 장항리 버스정류장 앞 중부수퍼를 찾았다. 17년 전 기사에서처럼 가게는 아내 윤주득 씨 홀로 지키고 있었고 이만재 씨는 폐품을 수집하러 나가고 없었다. 이 씨를 기다리며 아내 윤 씨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윤 씨는 17년 전 보도 이후 이웃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우리마을 반장이 국화꽃을 한다발 사가지고 왔었어요. 우리 마을 주민이 신문 기사에 났으니 경사라며 면사무소에서 기념사진도 찍었어요.”
17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진시대 세 번째 호에 소개됐던 이만재 씨의 삶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온 동네를 누비며 폐품을 수집했던 지게와 경운기는 오래 전 사라지고 그 사이 중고차 1톤 트럭도 사고팔기를 3번이나 더 했다. 합판으로 지었던 아내 윤 씨의 작은 구멍가게는 중간에 비닐하우스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조립식으로 새로 짓고 간판도 제법 눈에 띌 만큼 큼직한 것으로 바뀌었다.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세월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만재 씨의 부지런한 하루와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남편의 성실함을 믿고 의지하며 곁을 지키고 있는 아내 윤씨의 마음이 그것이다.
17년 전에는 폐품 수집하러 나가 기자들이 직접 만나지 못했다는 이만재 씨를 이번에는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안다니는 데 없지~ 대한민국, 당진군 어디라도 다 다니지요~ 바쁘구만요.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집사람에게 들으셔요~”
이씨는 금세 차에 올라타고 고물을 주우러 휑하니 떠났다.
윤 씨 말로는 아직도 주운 폐품이나 고물 중에는 돈이 될 만한 것인데도 주변에서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직접 가져다 나눠주기가 일쑤라고 했다. 버스정류장 앞에 위치한 터라 오가는 동네 사람들의 쉼터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는 윤 씨의 작은 가게에 간혹 남편 이 씨가 동네 사람들 손에 이끌려 오는 날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지. 동네 사람들이 우리 남편 손을 잡고 와서 막걸리 한잔이라도 사주려고 하는 날은 두말할 것 없이 또 무언가를 도와주고 오는 길이여. 동네에 혼자 사는 노인분들이 많으니까. 택배도 대신 부쳐주고 짐도 대신 날라주고 고장난 것도 고쳐주고 그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