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가명) 씨는 지적장애3급인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다. 아들은 비록 지적장애는 앓고 있지만 장애인 특수 대학까지 마쳤다. 하지만 다리가 아픈데다가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31살 나이에도 매일 집에서만 생활한다. 몸이 좋지 않은 건 김 씨도 마찬가지다. 장시간 일을 하면 온 몸이 붓는다. 때문에 모자는 온종일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간혹 김 씨가 동네에 일거리가 생기면 품을 팔러 나가지만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고정수입이 되지 못한다.
모자는 안성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막내아들이 매달 보내주는 3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되는 돈은 지적장애을 앓고 있는 아들 앞으로 나오는 몇 만원이 전부다. 그나마 남편이 남기고 간 집과 사회생활을 하는 막내 아들 때문에 수급자로도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비는 고사하고 병원비도 제대로 마련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밥상에는 김치와 밥만 오른 지가 꽤 됐다. 더 큰 문제는 큰 아들의 병원비다. 최근 몇 년 사이 다리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인근 병원에서는 관절염이나 통풍일 수 있다며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유했다. 하지만 병원비며 교통비는 물론이고 몸이 성치 않은 두 모자가 타 도시에 있는 병원을 오가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애들 아빠가 세상을 뜨고 난 뒤로는 어떻게 살아왔나 모르겠어요. 집 앞에 조금 있는 논에서 나는 쌀은 식량하면 그만이고 애가 아프다고 하면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김 씨는 몹시 지쳐보였다. 그녀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며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나마 김 씨가 지금까지 아들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앙심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50세 밖에 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볼 때면 앞으로 아들과 둘이 어떻게 살면 좋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김 씨는 목수였던 남편이 살아생전에는 넉넉지는 않아도 화목한 가정을 일구며 살았다. 성실한 남편은 열심히 일해 가정을 돌봤다. 두 아들을 끔직히 여겼던 남편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폐암으로 3년간 암투병을 하느라 남편이 모아 둔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
김 씨는 “가끔 마음이 무거울 때는 왜 나만 두고 먼저 갔느냐고 남편을 원망도 해본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앞이 캄캄하지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큰 아들을 생각해서 힘을 내야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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