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년 빌던 농촌마을의 상징
‘진품명품’ 감정가 5천만원
임진년 새해, 110년 묵은 용이 공개돼 화제다. 대호지면 적서리 4반에서 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보존해 왔던 농기 속, 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땅을 일구며 살았던 옛날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있듯 그야말로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지요. 농기는 그런 농촌마을을 대표하는 상징과 같은 거예요. 옛날엔 농사를 지을 때 풍물이 큰 역할을 했던 건 알죠? 그때 풍물대 가장 앞에 섰던 게 바로 농기예요. 마을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농기가 마을 주민들을 이끌었지요.”
어릴 적부터 농기를 보고 자란 마을 원로 송세동 씨의 설명이다. 농기는 농사를 하늘 아래 근본으로 삼고 농기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하나로 모였던 적서리 4반의 역사이자 상징인 것이다. 적서리 4반 마을에서 110년 동안 보존해 온 농기는 지난 세월이 무색할 만큼 상태가 좋았다.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온 푸른 용의 위엄이 금방이라도 깃발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할 기세다. 색감도 그렇고 용의 발톱 등 세세한 부분이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동안 농기를 장롱 속 깊숙이 보관만 해뒀던 건 아니다. 해마다 정월대보름과 음력 2월 초하루,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농군의 날이면 볏가릿대를 세우고 농기를 꺼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를 지낸다. 당진을 대표해 출전하는 각종 농악대회에도 적서리 4반 농기가 앞장을 섰다. 당진의 각 마을 농기가 한 자리에 모이는 기지시줄다리기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농기 보관을 맡고 있는 김종호(57) 씨는 “5개 반으로 이뤄진 적서리에는 원래 4개의 농기가 있었는데 4반의 농기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며 “적서리 4반의 농기는 당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적서리 4반의 보물인 농기가 오는 22일 일요일 오전 11시 TV 방송을 탄다. 지난 5일 송세동 씨가 마을대표로 KBS1 TV ‘진품명품’ 녹화장에 농기를 들고 다녀왔다.
“감정 예상가를 적어 내라고 하는데 얼마를 써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1천만원을 적어 냈는데 최종 감정가가 5천만원이 나왔지요. 감정사들이 하는 말로는 역사도 오래됐고 보관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하더라고요.”
송세동 씨는 “오랜 세월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농사의 정신, 마을 주민들의 화합 정신이 깃들어져 있다는 것이 농기의 진짜 값어치가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적서리 4반에서는 앞으로도 마을의 보물로 농기를 잘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을의 큰 행사마다 농기를 앞세우고 주민들의 화합을 다진다는 계획이다.
농기란?
농촌에서 한 마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기(旗). ‘농산기’, ‘대기(大旗)’, ‘서낭기’, ‘용기(龍旗)’ 등으로도 불린다. 풍년을 빌기 위하여 동제를 지내거나 두레 때 마을의 상징으로 농기를 세워두며, 이웃마을과 화합 또는 싸울 때에도 농기를 내세운다.
두렛일을 할 때는 이 기를 옮겨가며 풍물을 치고 모심기, 논매기를 한다. 농기는 흰색의 천에다 먹글씨로 ‘神農遺業(신농유업)’ 또는 ‘黃帝神農氏遺業(황제신농씨유업)’·‘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 등을 쓰거나 용만을 기폭에 가득 차도록 그리기도 한다. 농촌 사회에서는 농사의 흥망을 좌우하는 물이 중요하다. 때문에 농기에는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알려진 용 그림이 그려진 것이 많다. 농기는 제작연대가 오래된 것일수록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긴다.
적서리 마을 이음 유래
‘돌개’ + ‘개시리’ = 적서리 4반
돌 많은 갯벌 앞 마을
대호지면 적서리 4반은 예부터 ‘돌개’와 ‘개시리’라 불리웠던 적서리 중심부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호만이 막히기 전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옛날, 마을 앞 갯벌에 돌이 많다 하여 ‘돌개’라 붙었다 한다. ‘개시리’라는 지명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적서리 4반에는 현재 50대부터 90대 주민으로 이뤄진 27가구가 살고 있다. 주로 쌀 농사를 지으며 밭작물로는 꽈리고추와 고구마 등이 주요 작물이다.
적서리는 마을 일대의 흙색이 유난히 붉어 붉은 땅(土) 즉 ‘붉은 쥐’라 해서 적서리(赤鼠里)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서산군에 편입됐다가 1957년 다시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하전형 지형으로 적서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도산이란 도사가 산세를 보고 적서리라고 정했다는 설이 있고, 서북쪽에 고양이바위라 하는 바위가 있는데 고양이가 늘 쥐를 바라보고 있으니 쥐가 무서워 꼼짝도 못하고 먹지도 못해 늙은 쥐라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다.
그후 새마을사업으로 고양이바위를 부수고 굴 양식장을 만든 뒤, 대호만 간척공사로 옥토가 생겨 쥐가 마음을 놓고 들에 내려와 배불리 먹고 활동해 건강을 찾아 장수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대호지면 적서리는 산 고랑을 중심으로 나뉜 5개반으로 이뤄진 마을이다. 그 중에서 4반은 ‘돌개’와 ‘개시리’라 불리웠던 두 고랑이 합해진 마을이다.(대호지면지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