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마을 경로당이 ‘성수기’를 맞았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무료하고 적적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윷도 놀고, 장기도 둔다. 끼니 때가 되면 밥 당번을 정해 시래기된장국에 점심도 함께한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송악읍 가학리에는 전국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놀이가 두 가지나 보존되고 있다. 볏가릿대 세우기와 거북놀이가 그것이다. 지난 5일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마을 주민들은 어김없이 볏가릿대를 만들어 세웠다.

“볏가릿대는 마을의 풍흉년을 점치는 놀이지. 정월대보름에 마을 우물가에 마을 사람들이 손수 만든 볏가릿대를 세우는 거여.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전해져 오는 전통놀이지. 2월 초하룻날에 세웠던 볏가릿대를 눕혀서 볏가릿대 꼭대기에 매달아 놓은 쌀을 확인해 쌀이 불어 있으면 그 해 농사는 풍년이라 여겼어.”(성창모)

지금이야 상수도가 보급되고 지하수도 끌어 올려 사용하지만 수십년 전만해도 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촌마을에서는 물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때문에 풍년을 좌우하는 것 역시 물이었다.

“그때는 물이 귀했던 때였응께. 마을에 우물이 무척 중요했어. 그래서 대동샘에 볏가릿대를 세웠지.”

“그런데 몇 해 전에 대동샘에 주민이 빠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로는 샘을 막아버렸지. 그래서 이제는 마을 상수도 관정 옆에 세우고 있어.”(안선환)

볏가릿대 세우기와 더불어 가학리가 자랑하는 민속놀이는 바로 거북놀이다. 일제시대에도 빠트리지 않고 치렀다는 거북놀이는 신라 문무왕 때 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가학리에서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원은 정확치 않다. 다만 거북숭배의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전통놀이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놀이다.

“예전에는 거북이 모양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멍석, 삼태기 같은 걸 뒤집어 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놀이를 벌였지. 참, 그때는 신명났었어.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에는 언제 오나하고 기다릴 정도였지. 마을 부잣집에서 놀이에 참여한 청년들에게 술도 대접하고 했었지. 헌데 요즘은 전통을 이어왔던 주민들이 나이를 먹고 마을에 청년들도 없어서 이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여.”(성창모)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전통을 잇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 했다.

“옛날이 좋았지. 배고프고 없던 시절이긴 했지만 정은 더 많았어. 단오날이면 동네 처자들이 그네도 타고, 연초에는 액땜한다고 연도 날리고 했었어. 헌데 요즘은 세상이 각박해져서 정을 나누는 일이 흔치 않지.”(성창모)

가학리와 오룡산, 팔아산

가학리에는 현재 714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93명이 가학리 노인회에 속해 있다. 가학리는 크게 가새울, 윗가새울, 아래가새울로 이뤄져 있으며 총 10개반으로 나뉘어 있다. 당고개라 불리는 1반에는 옛날 신당이 있었다 하는데 석포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2반은 쇠학골이라 불리는데 전에 학이 많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새학골, 쇠학골, 쇠약골, 샘골로 불리기도 했다. 3반은 덕적골로 송악중·고등학교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4반은 마을 모양이 베틀의 도투머리와 같다하여 도구머리라 이름 붙었다. 5반은 터골, 7반은 서쪽말, 8반은 동쪽말, 당집이 있던 9반은 당닥골이라 불렸다. 당닥골에는 삽교호가 막히기 전 사리 때면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정우아파트가 자리한 10반까지 가학리에 속한다.

가학리에는 150년 된 모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모과나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볏가릿대를 세웠다는 대동샘과 마주하고 있다. 요즘도 가을이면 모과가 열린다고.

가학리에는 큰 산이 세 개가 있는데 오룡산과 옥녀봉, 팔아산이다.

“송악고등학교 뒤편으로 보이는 산이 팔아산이여. 그 산을 넘으면 송산땅이제. 팔아산이 왜 팔아산이냐면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말씀하시길 옛날에 홍수가 나서 마을이 잠기고 산도 잠겼다는 구먼. 그때 산봉우리가 팔할만큼 남았다고 해서 팔아산이라고 했댜.”

오룡산과 옥녀봉에도 얽힌 전설이 있다(송악면지 참고).

오룡산 정상에 옥녀봉이 있는데 옥녀가 봉을 타고 내려왔다가 올라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자리는 봉이 내려 왔다가 앉은 자리라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지금 송악중학교 앞쪽의 논을 말한다. 오룡산에는 대성사와 서원사가 있다.

또, 가학리 동쪽말 강대골 고랑에 맨발로 밟은 발의 윤곽이 뚜렷한 장수바위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바위를 1980년대 초 누구인가 감쪽같이 캐갔다. 사람들은 장수바위에 독을 밟고 성큼성큼 내려간 발자국을 보고 장수가 이 마을에서 떠나버렸다고 생각했다. 동쪽마을에 큰 바위들이 있는데 그 바위를 건드리면 동티가 났고 별로 좋은 일이 없었다 한다.

가학리는 당진시에서도 전통놀이가 보존되고 있는 몇 안 되는 마을이다. 주민들은 노령화로 인해 전통놀이를 이어갈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도 아직까지 매년 정월대보름에 전통놀이를 치르고 있다. 거북놀이는 지난 2003년 강원도 동해에서 열린 제4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충남도 대표로 참가해 동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거북놀이의 운명은 불투명하다. 전통놀이를 기억하고 있는 주민들이 점점 노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가학리에도 산업화가 진행돼 석포리와 경계에 송악농공단지가 들어섰다. 마을 곳곳에도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해 마을의 옛 모습이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