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높다. 자기주체성을 인지하는 연령이 낮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춘기도 빨라지고 자기주장도 거침없이 한다. 어른들이 보면 당돌하기도 하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면이 개념이 없는 아이들 같기도 하다. 아직 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꼬치꼬치 따지면 역공을 당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에 대해서 분노감정을 가지고 공격한다.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싸가지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른들에게 청소년들은 ‘문제아’라는 인식이 높다. 청소년들은 거꾸로 “어른들은 문제가 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왜 청소년들에게 교육만 강요하고 어른들은 책임을 회피 하느냐고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저항을 하면서 자기 인생에 대한 도전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저 어른들처럼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각오를 갖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청소년들은 현실과 어른들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없고 저항도 하지 않는다. 무기력하게 현실을 그냥 산다. 꿈을 꾸지도 않는다. 어차피 자신의 존재는 현실 속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좌절하고 있다.
한 청소년을 상담했다. 여자 아이인데 에너지가 넘쳐서 과잉행동을 한다. 또래들에게 자기주장을 너무나 강하게 해서 오히려 왕따를 당하고 있다. 관계능력이 부족한 아이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지만 또래들과의 관계에서는 갈등을 일으킨다. 자기존재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나 강하다. 성장배경을 보면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했던 결핍을 청소년이 되면서 또래들에게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장을 하기에 갈등을 일으킨다. 상대를 배려하고 적절하게 감정을 교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건강하게 자라지 못했다.
아이에게 유치원 때의 기억을 물으니, 약국놀이, 의사놀이를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왕따를 당해서 전학을 갔다. 초등학교 때 힘든 기억은 이유 없이 친구들이 자신을 왕따시켰다고 한다. 좋은 경험으로는 어머니와 쇼핑을 즐겁게 했던 것이라고 한다. 아이의 욕구 중에 가장 강한 것은 소속과 사랑의 욕구이다. 그래서 또래들에게 집착을 하며 다가가지만 오히려 또래들은 회피를 한다. 또래들에게 좌절을 자주 당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래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장난을 치는데 장난 때문에 싸움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고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
나에게 아이들을 만나는 경험은 나를 성찰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된다. 나도 청소년기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 1학년 까지 다니고 퇴학을 하게 됐다. 또래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없어졌다. 공장에 다니고 리어카를 끌고 거리에서 과일 장사를 했다. 건설 공사장에 다니면서 일용 노동일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나에게 가장 다시 회복하고 싶은 시절은 청소년이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낭만과 행복함을 경험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진다. 청소년들이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면 내가 행복해진다.
한국 사회에서의 청소년들은 문제아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위기청소년과 문제를 일으키는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면 미안함이 먼저 느껴진다. 사랑의 빚을 졌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자라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청소년이 성장하기에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점, 해맑게 자라고 즐거워야 할 이들의 행복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점이다. 청소년들을 만나고 교감하면서 소통할 때에 우리의 빚을 탕감 받게 되리란 믿음으로 오늘도 학교를 자퇴하겠다는 아이와 상담을 한다. 1년에 7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난다. 이 아이들에게 우리는 빚을 졌다. 빚진 자의 모습으로 오늘도 청소년들을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