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 동학농민운동은 고종 30년(1893년) 음력 섣달 그믐날 합덕방죽 몽리 지역 6개 마을주민 1000여 명이 당시 연제(합덕방죽)수리계장이었던 전 전라도병사 이정규의 착취와 탄압에 항거해 봉기한 대규모 농민운동이다.

당진역사문화연구모임(회장 김학로)이 동학농민운동 120년을 맞아 합덕 농민들의 항쟁 역사를 재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지난 15일 합덕성당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호서고김남석 교사와 예산역사연구소 박성묵 소장이 참여해 각각 ‘1893년 합덕농민 항쟁을 중심으로 한 면천지역 동학농민전쟁 연구’와 ‘갑오년 내포지역 동학농민전쟁 연구’에 대한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김남석 교사는 주제발표를 통해 “합덕농민운동은 고부농민봉기에 버금갈 정도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며 “농민운동의 전후사정도 비교적 구체적이기에 19세기 후반에 발생한 농민운동의 형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항쟁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박성묵 소장의 주제발표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적 봉기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전국 각 도처에서 봉기했던 시기와 주도인물 전개과정을 본다면 내포지역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은 합덕”라며 “합덕을 동학농민혁명과 연관성이 높은 지역으로 역사적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합덕농민운동은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고부민란 보다 1년 앞서 벌어진 농민운동으로 내포지역 갑오동학농민혁명의 서막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어 갑오년 내포지역 농민군은 일본 정규군과 맞서 전투와 항쟁을 치렀으나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해 무너졌다.

김학로 회장은 “최근 역사교과서 문제는 역사를 잊은 자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며 “찬란한 역사는 계승하고 부끄러운 역사는 반성하는 것이 민주사회로 가는 기본임을 인식하고 이번 토론회가 그 출발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토론자로는 당진역사문화연구모임 김학로 회장과 우리농업살리기운동본부 김희봉 대표, 당진시 문화체육과 남광현 문화재팀장, 공주동학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정선원 이사가 참여했다.

토론자 정선원 공주동학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

전라도 중심의 동학농민운동의 흐름을 뛰어 넘어야 한다. 공주의 경우 충청감영이 있고 주된 진압이 이뤄진 지역이다. 우금티 고개 이외에도 여러 면·리 단위에서도 농민운동이 일어나 진압이 이뤄졌던 상황이다.

토론자 남광현 당진시청 문화체육과 문화재팀장

동학농민운동을 위한 문화재지정이 필요하다. 당진의 승전목 기념탑이 시초가 되기를 바란다. 1년 전 부터 문화재 지정을 준비했지만 승전목이 폐허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모든 이들이 노력해야 할 시기다.

토론자 김희봉 우리농업살리기운동본부 대표

동학농민운동은 민중항쟁의 역사로 인식돼야 한다. 농민운동의 연장선으로 역사적인 민주항쟁으로 확립시켰으면 한다. 혁명의 의미가 축소되지 않도록 후대에서 농민역사를 바로 세워 계승할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토론자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모임 회장

합덕과 내포지역 봉기 과정에서 승전목 전투가 갖는 의미는 크다. 동학군이 유일하게 승리한 승전목은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황폐해져 방치돼 있다. 문화재 보존이 시급하다.

참가자 한마디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강사용 의장

당진은 타 지역과 비교해도 튼튼한 농민회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충남권에서는 공주, 예산에서만 농민운동이 벌어진 것으로만 알아왔다. 농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들이 농업·농민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예산동학천도교도정 이용우

당진에 동학사상이 치열했던 것으로 들어왔다. 합덕·당진은 동학군들이 많았던 지역이지만 아쉽게도 동학운동의 역사가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

당진번영회 이인수 회장

합덕에서 자랑스러운 농민봉기가 일어났다는 것을 근래에 들어 알게 됐다. 농민들의 봉기가 아닌 ‘난’으로써 치부돼 쉬쉬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역 역사연구모임에서 농민봉기에 대한 역사적 검토와 연구를 통해 합덕 동학농민운동의 역사를 재조명 해야한다.

내포문화원 홍석표 원장

30여 년 전 승전목을 군립 유적지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승전목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되지 않아 훼손돼 왔다. 시와 시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