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인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날씨가 선선해져서 그런지 그만 집 안으로 쥐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외출을 하려다 아이들과 쥐를 마주친 사모님은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부터는 온통 쥐 생각뿐입니다. 어떻게 처리할까? 어떻게 잡을까?

다행히 허락 없이 집안으로 침투한 쥐를 일명 ‘끈끈이’를 놓아 잡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후련했을지 상상이 됐습니다. 어디 쥐뿐이겠습니까? 바퀴벌레 한 마리만 봐도 잡지 않고는 마음이 내내 찜찜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모기 한 마리만 있어도 잡아내야만 마음이 편안합니다. 집 안에 쥐든 바퀴벌레든 하루 밤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에 내어주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고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찌 마귀와 세상에 빼앗긴 마음을 지저분한 쥐에게 내어준 침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앗아갔는지, 지난 며칠 아니 몇 시간 동안에만도 무엇을 빼앗겼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온갖 근심과 걱정, 다른 누군가에 대한 시기와 알 수 없는 부러움, 누군가의 간섭에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까? 사탄은 하루 종일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사랑을 소매치기해 가고 있습니다. 무례한 약탈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허락도 받지 않습니다. 예고하지도 않습니다. 틈만 있으면 어떻게든 우리 마음에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우리의 마음과 삶을 도둑질해 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4:23)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바로 감사의 생각, 감사의 기억입니다. 홍정길 목사는 “종은 칠 때 종이고 장작은 타오를 때 불인 것처럼 믿음은 감사할 때 믿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것도 거기서 감사를 제거하면 절름발이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감사입니다. 우리는 한순간도 불평, 염려, 비교의식, 시기 등에게 우리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전광 목사는 그의 책 <평생감사>에서 불평이 불행해지는 연습이라면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노벨이란 사람이 쓴 ‘조금’이라는 글입니다. “설탕을 조금만 넣어도 음식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비누를 조금만 써도 몸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햇빛이 조금만 비춰도 새싹이 힘차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연필이 조금만 남아도 아름다운 글 한편을 쓸 수 있습니다. 양초가 조금만 남아도 주위를 환하게 비출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하는 그 조금의 습관이, 좋은 생각이, 희생이 충분히 삶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한순간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 받은 것을 인정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