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도 (기부활동 때문에)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낯간지러워 도망다니느라 고생 좀 했슈. 오늘은 마을 회장님이 할 말 있다고 불러서 나왔는데 이런 자리였는지 몰랐네….”
20여 년간 꾸준히 봉사를 해온 우강면 소반리 한인수 씨는 봉사를 하지 않으면 뭔가 허한 기분이 든단다. 한 씨는 지난 1994년부터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해 최근 그 액수를 늘여 1년에 100만 원씩 기부하고 있다.
그는 “나도 어려운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근근히 살아가는 지금도 어려운 이웃들이 남 같지 않아 기부를 하게 됐다”며 “섣달그믐이면 떡조차 먹지 못하는 이웃들을 챙겨주는 게 다인데 작은 일에 취재를 오니 낯간지럽다”며 얼굴을 붉혔다. 또한
그는 사비를 들여 350여만 원의 콘테이너를 구입해 차 한 잔 할 곳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이곳에 모이는 노인들은 정자나무 친목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우강면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낸 그는 없이 산다는 것이 뼈에 사무치는 ‘한’이라는 것을 잘안다.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살이부터 마차끌기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너무 배가 고파 잡초 씨앗을 훑어내 끓여 먹었을 정도란다.
“볏집으로 가마를 만들어 팔면 푼돈을 좀 만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낮에는 하루종일 일하고 저녁엔 밤새도록 가마를 만들었죠. 아마 소반리에서 가마 만드는 솜씨는 내가 일등이었을 거여.”
열심히 일한 덕분인지 차츰 생활이 나아졌고, 700평의 농지도 어느새 몇 배로 불어났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가 중풍으로 쓰러졌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 씨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몇 일간 의식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수술 후 몸이 완쾌됐고, 주변 이들은 하도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며 입 모아 칭찬하기도 한다.
“봉사는 어떤 의미냐구요? 글쎄…. 그런 건 잘 몰라요. 그저 내 생에서 힘닿는 한 이웃을 도우며 살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