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바쁘다는 핑계로 지척인 태안군 남면, 고향에서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내일이라도 시간을 내서 고향에 다녀오자고 다짐하고 보니 할머님이 돌아가신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먹을 것이 많지 않아 항상 배가 고팠던 시절, 할머니는 잡숫지도 않으면서 우리들에게는 배고프지 않도록 노력하셨던 그 애틋한 손자 사랑이 너무나 지극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철이 없어서 우리들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내가 유성 종축장에서 근무할 때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고향집으로 향했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운명으로 슬픔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왔다. 할머님의 돌아가신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아직도 여전히 소녀 같은 심성을 가진 할머님의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던 생각이 간절했으며, 얼굴 가득 빼곡해진 주름 굴곡 너머로부터 할머님의 세월이 그려져 있었다. 살 같이 빠른 세월을 잡을 재간이 없었기에 다가올 운명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 일상 중에서 가슴 한편엔 때론 흐린 미소와 회한의 한숨으로 찬란했을 한때를 회상하며 노년의 한때를 보냈을 것이다. 내가 어렵사리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주 찾아뵙겠다고 다짐했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내가 결혼하고 할머님은 증손녀까지 봤다며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막상 돌아가실 때는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불효막심한 손자가 되고 말았다. 이후 지금까지 명절 때만 할머니 산소를 찾아뵙고 평소에는 통 잊고 살았다.
내 자식들에게 효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싶어 나름대로 고향에 가서 어머님도 자주 찾아뵙고, 집 뒷산에 있는 할머님 산소를 찾아가곤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런 효도는 너희 할머님께서 살아생전에 받으셨어야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적시신다. 어머님께서는 일전에 27년간 인삼밭 제초작업 등으로 모은 돈을 5남매에게 2000만 원씩 나누어 주셨다. 그런 어머님이 오래오래 사셔서 할머니께 못다 한 효도를 대신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 청렴한 인생을 신조로 살아 오셨던 분. 어려움 속 에서도 우울해 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굳센 마음으로 역경을 이겨 내셨던 어머님. 집안이 어렵고 힘겨운 시절이 있었지만, 역경과 긍지로 모든 괴로움을 극복하시며 살아 오셨다.
어머님은 하실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우리들을 키우시고 돌보셨기에 난 평생 감사함을 느낀다.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서로를 생각하고 양보할 줄 아는 심성을 자식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기도 때 마다 어머님께서 건강히 오래 사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