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붓다가야 근처에 있는 영축산에 머물며 생사에서 해탈하는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 수행을 하셨다. 영축산은 2600년 전 마가다국 사람들에게 영험 있는 산으로 여겨졌으며 수행자들의 성지였다. 산의 정상이 하늘을 지배하는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기에 영축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영축산에서 수행을 하시는 부처님께서는 네란자라 강가의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 수행하셨다. 그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의 지위에 이르게 되었기에 그 나무를 보리수라 부르게 되었다.

이렇듯 산과 강, 나무, 바위들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갖게 하고 의미를 부여받았다. 당진에서 서산으로 20분 정도 가면 용현리가 위치해 있다. 내포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내포의 동서남북 사방지역을 굽어보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이 가야산인데 그 가야산 동북면에 있는 계곡이 용현리 계곡이다.

백제시대 중국 산동지역에 있는 양나라, 수나라와 교역을 했던 백제 항구가 현재 태안에 있는 안흥이다. 이곳으로 석굴과 석불문화가 전래되어 태안 동문리에 한반도 최초로 바위에 새겨진 마애석불인 마애삼존불입상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조성된 마애석불이 용현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이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유명한 마애삼존상이다. 그 후 전국 산하 곳곳에 바위에 새겨진 보살상과 부처상이 등장하며 돌을 조각해서 만든 석상이 조성됐다. 왜 사람들은 산에 있는 바위에 불상과 보살상을 조성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큰 산을 경외의 대상으로 보았고 특히 그 산에 있는 특정한 바위나 나무들을 신성시했다. 그런 바위나 나무에 신들이나 정령들이 머물고 있다고 보고 경배를 하고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래서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되고 석불조성문화가 들어오면서 스님과 불자들은 주변의 유명한 산의 바위나 교역로나 마을과 마을의 이동로에 있는 중요한 바위에 불상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바위에 불상을 조성하여 마을을 보호해주고 여행자가 무탈하게 귀환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지처가 되도록 했다.

바위에 불상을 새겼던 스님이나 석공들의 원력과 바람이 각각 석불의 면면에 드러나 있다. 때로는 웅장하거나 장엄하게, 때로는 자비롭고 온화한 모습으로, 때로는 근엄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마애석불을 조성한 스님이나 석공의 원력과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사람, 마을, 나라의 안녕과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렇듯이 부처님의 염원은 사람들의 안녕, 행복, 해탈에 있다. 그러한 염원으로 부처님은 사람들이 각자가 안녕하고 행복을 성취하며, 사람들이 직면한 가장 큰 괴로움인 죽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도록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얻은 지혜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근기와 이해와 믿음에 따라 섭수하여 안녕과 행복과 해탈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개인, 사회 공동체와 나라가 안녕과 행복과 해탈을 이루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수단, 바른 노력, 바른 주의집중, 바른 선정인 팔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