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한창인 요즘, 송산면 가곡1리 주민들에게 ‘수확의 기쁨’이란 오래된 얘기다. 김장철을 앞두고 수확해야 할 배추는 날아든 쇳가루로 속속들이 새카맣고 콩과 참깨, 들깨 등 곳곳에 자석만 갖다 대면 시커먼 분진이 들러붙는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가곡1리에서는 더 이상 양질의 농산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농사를 지어도 먹기 어렵고, 팔 수도 없다. 여름 내 땀 흘린 노동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새카맣게 내려앉은 쇳가루와, 검게 타들어 가는 농부들의 마음뿐이다.
가곡1리 주민들은 지난해 수확철에도 마을 곳곳에 내려앉은 쇳가루로 홍역을 치렀다(본지 제1026호 기사 <마을 곳곳에 쇳가루…“심각하다”> 참조). 지난해 주민들은 배추와 무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현대제철로부터 무 2만2590개, 배추 2만5858포기에 대해 500원씩 보전받은 뒤 전량 폐기했다.
농산물 피해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자체가 바뀌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주나 시래기를 말리는 모습도 사라졌다. 주민 정치웅 씨는 “(현대제철 입주 이후) 밖에 빨래를 널 수도 없고, 메주로 장을 담근 지도 오래됐다”며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도 매일 호흡하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건강이 상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주민들이 직접 작성한 마을 환경오염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은 “마을 전체가 철가루로 뒤덮여 있다”며 “주민들은 이런 곳에서 먹고 호흡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악취와 소음, 그리고 분진 피해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해 왔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곡1리 환경대책위원회 최준영 위원장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등 상생 협조 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지만 현대제철에서는 주민들이 보낸 공문에 답변조차 없었다”면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현재 90여 가구만이 남은 가곡1리 주민들은 매년 수확철마다 이러한 일들을 반복하면서 살 수 없다며 집단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당장 이주가 불가능하다면 농산물 피해를 저감시킬 수 있는 단기적 방안이라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곡1리 환경대책위원회 김명용 사무국장은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산물 중에서 쇳가루 피해가 덜한 뿌리채소 등을 심어 현대제철 직원식당에 판매할 수 있도록 협약할 것도 제안했지만 거의 무시당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 상생지원팀에서는 “현재 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아직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며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문제와 관련해 현대제철 상생지원팀과 환경지원팀은 자신들의 담당이 아니라고 서로 미루는 모습을 보여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