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순 / 합덕교회 목사

하나님의 저울

수년전에 성지순례차 불란서 파리를 갈 기회가 있어서 돌아보는중 지금으로부터 약 8백년전에 무려 2백년을 걸쳐 건축한 유명한 ‘노틀담’성당을 둘러 보았다. 이 성당 외형을 돌아보다가 전면에 새겨진 벽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이 그림은 큰 저울이 있고 저울 양쪽판에는 각각 사람이 타고 있었다. 한편에는 천사가 한편에는 마귀가 무게를 더해 주려고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그림의 뜻을 물으니 구약성서 다니엘서 5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저울을 설명해 주었다. 그 내용인즉 기원전 5세기경에 바벨론 제국에 ‘벨사살’이란 왕이 있었는데 집권 전성기에 그의 업적을 이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여 결국은 그날밤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의해 나라는 망하고 왕은 죽임을 당한 역사적인 사건을 이 벽에 조각해 놓고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우쳐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저울은 눈에 보이는 량(量)을 달아보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했느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소유했느냐? 얼마나 많은 별을 달았느냐? 얼마나 큰 권세를 가졌느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질(質)을 달아본다. 얼마나 진실했나? 얼마나 백성을 사랑했나? 인류를 향한 신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았나이다. 그러기에 벨사살과 같은 역대의 왕들도 이 저울에 부족하면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고 돈을 물 쓰듯하는 재벌도 이 저울에 부족하면 하루아침에 거리의 탕아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저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세상은 진실을 몰라주어도, 세상에서는 억울한 일이 많아도, 세상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아도 이 저울에 부족함이 없으면 영원히 부족함이 없을 것인즉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나님의 저울!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부정과 불의를 해서라도 얻기만하면 된다는 권좌(權座),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모으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부(富), 이 모든 것들이 이 저울에 부족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화가 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자유세계와 싸울 필요가 없다. 저들은 내버려 두어도 조만간 부패라는 병으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비록 독재자의 말이지만 얼마나 두려운 말인가?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부패라는 사회악이 너무도 깊숙히 자리잡고 있으며 거리에는 폭력이 난무하고 신성한 전당에서는 아직도 날치기의 수법이 합법화되어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사회 심리학자인 에리히프롬은 사람을 두 분류로 구분하여 ‘소유형의 사람’과 ‘존재형의 사람’이라고 했다. 소유형의 사람은 무엇이든지 소유함으로 만족하는 사람, 그것이 물질이든 권세이든 말이다. 그러나 존재형의 사람은 가치를 추구해 사는 사람이다. 나는 이 돈으로 어떠한 일을 해야하나? 나에게 주어진 직책을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나? 사명감에서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또 한해를 시작하였다. 희망찬 한해, 21세기를 준비하는 한해라고 한다. 바라는 그대로의 한해가 되어지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들이 내가 소망한다고 다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신이 도와 주셔야 한다. 그러기에 금년은 하나님의 저울에 부족함이 없는 한해가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