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 강원래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17년 전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불법 유턴하던 차량과의 사고로 인하여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설마 마비야 되겠는가 여겼지만, 4~5개월이 지나면서 자신의 현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장애인이라는 수식어 보다는 장애를 극복한 휴머니스트이자,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뮤지션입니다.
강원래 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했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부활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는 부정과 분노. 좌절 속에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크나 큰 고통을 가져다 준 가해자를 용서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열정을 선택했습니다.
제23회 충남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당진이 종합우승을 했습니다. 327명의 선수들이 21개의 종목에 출전하여 총 195개의 매달을 획득하였습니다. ‘훈련을 하다가 허벅지 실핏줄이 터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라며 인터뷰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앞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감독도 있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누구나 잠재적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많은 사건과 사고의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삶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느니라’(잠언 27:1) 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주변에는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작은 관심과 배려 혹은, 돌봄이 필요한 분들에게 조용히 다가가는 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도전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는 것이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워 지치고 힘들어도 형제가 있고 이웃이 있기 때문에, 힘이 되고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 ‘할 수 있다’라고 외쳐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