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 앞에는 두 길이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고 남은 생애도 이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

모세는 그 두 길 중에 한 길은 생명과 복의 길이고, 또 다른 한 길은 사망과 화의 길이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하셨다. 또한 바울 사도는“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했고, 고전10장에서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라고 했다.

그렇다. 모든 사람 앞에는 생명과 복의 길과, 사망과 화의 길이 있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생명의 길이 있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멸망의 길이 있으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망의 길이 있는가하면,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생명과 평안의 길이 있다. 그리고 자신과 이웃에게 덕을 세우는 유익한 길이 있는가하면, 자신과 이웃에게 덕을 가리는 무익한 길이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과 처지는 지난날 내가 선택한 선택의 결과이다.

바둑은 흙과 백이 있다. 흙이 먼저 한 수를 두면 그 다음은 백이 또 한 수를 둔다. 흙이 한수를 둘 때 백이 연거푸 두 수를 두거나, 백이 한 수를 둘 때 흙이 연거푸 두 수를 두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한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패할까? 답은 간단하다. 한 사람은 사는 곳에 두어서 이기고, 한 사람은 죽는 곳에 두어서 패한 것이다. 이 이치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나라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울사도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며 탄식했다. 그렇다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선과 악, 진리와 비 진리, 생명과 사망, 복과 화를 분별 할 수도 없다.

혹 분별한다 할지라도 그 생각을 삶속에 실천할 능력이 없다. 성경은 분별할 뿐 아니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그분은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보혜사 성령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면 그분이 가르쳐주시고 때에 적절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2017년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 왔는가를 되돌아보자. 실패했다면 아니 만족하지 않는다면, 2018년은 보혜사 성령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기로 뜻을 정하자. 그분은 실수하시지 않으신다. 주여!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