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덕 균 / 당진성결교회 담임목사

소유의 아픔이 있습니다

-아모스 5:11-

톨스토이 소설 가운데

좧사람은 얼마의 땅을 필요로 하는가좩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주인공 파흠의 꿈은 넓은 땅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하루종일 밟은 땅이 그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는 신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는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자기 소유가 될 땅을 밟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걸어서 한치의 땅이라도 더 밟아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가 지기 전에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와야 했지만 온종일 쉬지 않고 걸어서 지친 그는 그만 그 땅에 엎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이 파흠의 후예들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어느 한 모퉁이에서는 ‘유산 안남기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실업가들이 그들인데, 그들은 자신의 유산들을 죽기전에 하나님과 사회에 기증키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빈 손으로 왔으니 모두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고 다시 빈 손으로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이토록 다른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같은 신앙을 가졌지만 이들은 얼마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입니까? 자신만을 위해 사는 세상에서 남을 위해 살기로 한 유별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입니다. 33년을 부지런히 이웃을 위해 걸었던 분입니다. 우리모두 예수일 수는 없습니다만 그의 삶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일 수는 있습니다.

요즘 ‘가족 이기주의’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 가정, 내 자식만 챙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정의 기본구조가 핵가족으로 변모되면서 이런 상황이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잘 양육하여 신앙과 지혜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그저 부모 자신이 세워놓은 이기적인 야망에 자식들을 맞추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이해하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폭넓은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챙기고 남을 누르고 앞장서야만 하는 존재로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이 결국은 형제도 몰라라 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부모도 내다 버릴 수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이나 집을 챙겨 자기 자식들 몫으로 모아두기에만 골몰한 어리석은 부모들은 바로 파흠의 후예들입니다. 우리는 파흠의 후예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예가 됩시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라. (디전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