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 경 / 기지시감리교회 담임목사
내 눈의 들보를 보게 하소서
사람의 눈은 앞을 향해서 달려있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과 사물은 보아도 자기의 얼굴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약점을 지닌다. 이러한 약점은 자신의 결점을 보지 못하면서 남의 결점만을 보고 남을 비판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범하기 쉬운 잘못을 지적하신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7:1-5참조).
여기에 우리가 평소 소홀하기 쉬운 위대한 교훈과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우리가 자신의 결점을 알지 못한 채 남의 결점과 잘못만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하는 큰 이유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가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야를 가리워서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발견하고 그 들보를 제거하면 자신의 모습을 밝히 보게 되고 따라서 자신을 깨끗이 하며 온전케 함으로 그제서야 남의 잘못을 지적하며 시정시킬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들보와 티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들보는 건축자재로 사용될 만큼 큰 것을 비유한 것이고, 티는 작은 먼지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엄청난 잘못과 결점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아주 포용적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주 작은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는 인색한 인간모순의 행태를 고발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은 당시 종교지도자들 즉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엄청난 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남을 잘하라고 가르치는 외식(형식)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남을 가르치는 자들, 즉 지도자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잘 지적해 주신 말씀이다.
오늘 우리사회의 불행이 어디서 오는가, 대개 지도자들의 타락에서 온다. 정치ㆍ경제ㆍ종교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정부패의 고리가 사회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으며 사회전체가 잘못된 의식과 관행에 익숙해져서 거기에 대한 도덕적 감각을 잃은 이른 바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있다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사회의 현실적인 불행이 아닌가.
더욱 우리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상호불신풍조와 그로 인한 상호비방과 책임전가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잘못만을 탓하는데서 “너는 무어냐?”라는 반감으로 불신풍조는 만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사회에 어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모두들 남의 탓만을 한다 “너 때문에”, “누구 탓이야”만 있을 뿐이지 “바로 내 탓이야”, “내 잘못이야”는 찾아 볼 수 없다. 여기에 문제의 해결이나 불행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니느웨성의 선교사로 부름받은 요나는 책임회피로 바다의 큰 풍랑을 만나 결국 자기에게 그 책임소재가 밝혀졌을 때 그는 곧 바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벌로 자신을 바다에 던져 버리라고 했고 그럴 때 바다가 잔잔하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 우리사회의 불행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눈을 돌려 우리모두가 한번쯤 나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고 깨닫는 의식변화가 있다고 하면 불행은 치유될 것이다. 누구든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해 보면 잘못이 남에게 보다는 내게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가?
요나가 자신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제비뽑힌 것 때문이었다. 요나에게 제비가 뽑힌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만이 피의자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요나가 하나님의 뜻에 결국 자신을 바로 보고 회개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뜻)은 인간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거울이다.
사람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거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고꾸라졌고 새 사람이 되었다. 이사야가 그랬고(이사야6:1-5참조), 자기가 최고로 잘났고 잘했다고 자만했던 사도 바울이 그랬다(행9:1이하 참조). 성 어거스틴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탕아의 삶에서 성자의 삶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비춰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 남을 향한 비난과 비판보다는 참회와 반성과 새로 거듭남의 새 삶으로 변화될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앞에 진지하게 서는 그 순간부터 이미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사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남의 눈의 티보다는 내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발견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게 하소서”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