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용 완 / 탑동감리교회 담임목사

옳은 자에게 무죄를, 잘못한 사람에게 유죄를

구약성서 신명기에는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야 될 많은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재판에 대한 판단을 바로 할 것을 교훈하는 중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라고 명하고 있다.

즉, 옳은 사람에게는 무죄를, 잘못한 사람에게는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역사는 얼마나 이것이 어렵고, 또한 잘못을 범하기 쉬운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심판할 때 본디오 빌라도는 그가 잘못이 없는 줄 알면서도,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자신의 확신을 외면하고 예수를 정죄했었다.

자신의 현재의 위치나 기득권이 침해를 받고 싶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의 질책이나, 자신의 범죄가 두려워서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지 못하고, 악한 자를 악하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작금의 정치계가, 사회가, 경제가, 십대들의 문제가 어지럽다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소리친다. 처방도 수없이 외쳐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변하는 것이 없다.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지 못하고, 악한 자를 악하다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종 혼란의 중량은 끝이 없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가면 “야드바쉠(영원한 기념)”이라는 유대인 6백만 학살추모관이 있다. 나치독일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6백만 유대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추모관이다. 넓은 지역에 많은 건물들과 기념비, 조각 등이 있는데 대개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시기부터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하는 때까지를 시대별로 설명하고 있는 역사관을 먼저 들른다.

그 역사관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하루빔이라고도 하는 쥐엄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그 아래 작은 푯말에는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이는 유대인들을 나치에서 구한 비유대인들이나 단체들의 이름들이다.

그중 한 나무 밑의 푯말에 “Oscar Schindler(오스카 쉰들러)”의 명단이 있다. 체코슬로바키아계 독일인인 그는 목숨을 걸고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한다. 유대인 말살이라는 시대적, 정치적 상황 속에서 그것을 거스르고 유대인을 구해낸 그의 삶의 태도에서 의를 의롭다고 말하며, 불의한 사람을 정죄하며 살아갔던 증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의와 악을 구별하며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다만 문제를 구별함에 있어 내게 돌아올 유익에 따라 얼마든지 의와 악을 바꾸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악의 기준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범죄이자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의인을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신명기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