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얄미운 여자

▶남 연 숙

방송작가

얼마전 우연히 얄미운 여자 시리즈를 들었다. 어찌나 재밌던지 배를 잡고 웃다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씁쓸해지는 기분에 착찹해지기까지 했다.

나이별로 얄미운 여자가 달랐다. 10대의 얄미운 여자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여자. 20대는 공부도 별로고 얼굴도 별로고 뭐 특별한 게 없는 여자가 엄청 시집 잘가는 경우. 30대의 얄미운 여자는 많이 먹어도 살 안찌고 날씬한 여자. 40대의 얄미운 여자는 자식에게 별신경 안쓰고 해주는 것도 별로 없는데 그 자식이 일류대에 합격하는 경우. 50대는 골프 치러 다녀도 얼굴 안타고 하얀 여자. 60대의 얄미운 여자는 엄청 돈 많은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는 경우.

이것이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많은 여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흥미롭다. 그냥 우스개 소리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자세히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요즘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꼬집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별로 한번 살펴보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10대 여자. 아직까지는 그래도 좀 봐줄만 하다.

잘나지도 못한 것 같은데 시집 잘가는 여자. 아직도 시집 잘가서 팔자 고치고 싶어 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만연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잘난 남편 만난 별볼일 없는 여자는 과연 남편에게서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살 안찌는 30대 여자. 요즘 다이어트 제품이라면 불티나듯 팔리는 세상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별 노력없이 살 안찌는 여자는 아주 특별한 체질을 제외하고는 어딘가 아픈 여자다. 아무 노력없이 날씬하기를 바라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가꾸고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많이 먹는데 살 안찌는 여자는 결코 없다. 이것이야말로 30대 여자의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40대의 얄미운 여자. 가장 많은 여자들이 공감하고 한탄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일류대병에 찌든 엄마들의 진심어린 탄식이다. 자식의 일류대 합격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땅의 여자들. 일류대생들을 원하는 우리 사회 때문에 멍드는 40대 여자들. 참교육, 전인교육을 외치며 실천하는 여자는 이 사회에서 왕따 당한다.

골프치며 얼굴 안타는 여자가 얄밉다는 50대. 그야말로 팔자 좋은 여자들이 하는 소리려니 하고 넘어가기에는 심각하다. 건강하고 안정된 가정의 50대 여자라면 골프나 즐기며 외모 가꾸기 보다는 사회봉사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이 요구된다. 자신이 행복함에 감사하고 그만큼 남을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여자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가.

60대의 여자에게 남편은 시중만 들어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던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양보하는 삶을 살아왔으면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웃으며 하는 것일까? 남자들은 60대에 아내에게서 대접받고 사랑받고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배려해주는 데서 가능하다.

얄미운 여자 시리즈는 어느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한국사회에서만 통하는 농담일 것이다. 하지만 진담 아닌 우스개 소리가 때로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임을 생각하면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왠지 꺼림칙하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