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용사회 정착을 저해하는 신용불량자 사면조치
이돈구
당진신협 부장
본지 편집위원
또 ‘눈 가리고 아옹’인가? 지난 4월 정부 여당의 당정회의에서 결정된 신용불량정보 해제자에 대한 기록삭제 등 신용불량자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조치 내용을 접하고서 아연실색하였고 과연 현 정부가 원칙과 소신이 있는 정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용불량정보 등록자로 등재되어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불량기록 때문에 금융기관의 대출이나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없어 결국 고리의 사채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급증하였고 그 수요가 증가하면서 급기야는 악덕고리 사채업자에 피해를 당하는 서민들이 많아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말하지만 정치적 선심행정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면조치에 대한 명분이 약하고 시기적으로도 선거가 임박했다는 데 있다.
평소 지역금융기관에서 근무하며 신용불량자로 기록되면 향후 엄청난 불이익이 가해질 것이라며 어차피 상환할거면 힘들더라도 좀더 노력해서 기록이 등재되기 전에 연체원금 및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고 독려했는데 이제와서 불량기록을 전부 삭제하고 금융기관에서도 불량기록을 공유할 수 없게 한 정부의 조치는 최선을 다해 신용과 약속을 지켰던 수많은 신용우량자들과 선의의 국민들에 대한 기만이고 약속위반이다.
대출자의 개인신용에 따라 철저하게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우리처럼 신용불량정보 해제자에 대한 전면적인 기록삭제 등을 은행연합회에서 일괄적으로 전산 삭제하는 대대적인 선심성 사면의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진실로 정부와 여당이 사채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해서 사면정책을 추진한다면 일시적인 불량기록 삭제보다는 근본적인 경제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시스템은 신용불량자를 계속 양산하고 있는데 문제의 근원적 해결보다는 긴급처방으로만 대처하다 보니 더 큰 문제가 안에서 곪아터지는 것이다. 금융부문의 개혁이 좀더 빨리 완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또 대대적인 사면을 추진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 가계의 빚이 320조원으로 4인 가족 평균 2천3백만원으로 전년대비 12%가 늘어났고 가계부채의 이자부담도 43조원에 이르고, 부채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25%로 미국의 49%, 일본의 33%에 비해 현저히 낮다.
모두가 정부의 탓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유사금융업과 무분별한 신용카드발급을 규제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사면조치로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혜택을 입을 것인가. 신용불량 등록자의 과거 기록만을 말소하면 당장에 그들이 신용우량자가 될 것인지 의심스럽다. 결국에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신용사회를 후퇴시키고 금융시장발전을 저해할 것이 자명하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단행된 밀레니엄 대사면 때에도 43만명의 신용불량자들을 사면해주었지만 그뒤로 신용불량자는 또다시 급증해 3월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자가 200만명을 넘고 연체금을 상환한 불량기록 보존자가 100만명이나 된다. 결국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7분의 1이 넘는 300만명의 불량자를 양산하였다. 이번 사면조치로 혜택을 보는 100만명의 불량기록 보존자들이 다시는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좀더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촉구한다.
하나의 제도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처음 올바른 신용사회 정착을 위해서 시작한 제도인만큼 다소의 고통이 있더라도 원칙이 지켜질 때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며 약속을 지킨 신용우량자들에 대한 보답도 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가 신념없는 정치가들에 의해서 불운을 맞았듯이 한국의 경제도 신념없는 경제관료들의 정치권 눈치보기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500년전 정치는 철저한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갈파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