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서 버려진 나뭇가지 자연미로 들쑥날쑥 도깨비 50여점

“도깨비는 심술궂지만 선하고 이미지가 무궁무궁해요”

도깨비 속에 불어넣는 자연인의 자연친화적 상상력

“우리 옛날이야기들을 한번 생각해 봐유. 도깨비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은 게 없잖유? 도깨비는 심술궂어서 매사가 거꾸로지만 결국엔 우리에게 복을 주는 존재유. 그래서 그 도깨비를 실내장식용 공예품으로 만들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걸요.”

지난해 당진군 공예품경진대회에서 <흙으로 빚은 탈 촛대 designtimesp=1588>로 최우수상을 받은 차종인(52세)씨. 4년 전부터 그의 작업장에서는 도깨비 만들기가 한창이다.

그의 말대로 도깨비는 옛날부터 소박한 서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지혜의 담당자였다. 혹부리영감에 나오는 도깨비가 대표적인데 이 도깨비는 욕심부리지 않고 지혜롭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윤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 가서 어르신들 이야기 들어보면 기가 막히유. 도깨비들은 ‘어디 한번 죽어봐라’하는 신끼를 가지고 있어서 ‘아이구 돈많아 죽겠네’하면 돈을 듬뿍 주고 ‘아이구 재밌어 죽겠네’하면 재미를 더 준다는 거유. 그러니 뭐가 부족해 죽겠다든지 괴로워 죽겠다는 소리는 않는 게 상책이지유. 그랬다가는 도깨비한테 괴로움만 듬뿍 받게 생겼으니까.”

옛사람들의 기막힌 익살과 지혜다. 도깨비를 내세워 어른들은 ‘행복의 비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정적인 암시와 생각과 말 대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암시와 말을 하라는 것이니까. 그러면 복은 도깨비가 주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올 테니까.

그러므로 도깨비를 생활 속에 살려보자는 생각은 재미있을 뿐 아니라 속깊은 것이었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늘 도전에 나서는 차종인 씨에게서 이 도깨비생각이 4년 동안이나 시들지 않는 것은 도깨비의 다른 성질 때문이다. 그것은 도깨비가 고정된 형상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상상 속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형상이 무궁무진 열려있어서이다.

이미 정해진 것, 규격화된 것, 뻔한 것을 싫어하는 차종인 씨는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도깨비 작업이 재미있다. 볼이 불룩한 놈, 이마가 튀어나온 놈, 혀를 내민 놈, 이빨이 빠진 놈...... 마음 가는 길을 막아서서 이건 이래야 되고 저건 저래야 된다고 스스로 훼방놓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늘 신이 나고, 해도 해도 새롭다. 도깨비 작업을 하면서 그는 대단히 자유롭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것들이 경이롭다.

차씨의 작업에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있다면 재료를 애써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주변에 있는 것, 심지어 버려진 것들에서 찾는다. 최근까지 그의 도깨비 작업의 재료는 흔하디 흔한 조롱박이었다. 조롱박을 반으로 쪼개 뭉툭한 쪽에 도깨비 얼굴을 만드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게 그러나 불에 타지 않도록 코팅까지 완벽하게 벽걸이 도깨비는 만들어진다.

차씨가 조롱박으로 만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촛대다. 작은 조롱박은 박의 밑둥 조금만 잘라내어 거꾸로 세우면 훌륭한 촛대. 하나만 하면 단조로우니까 조롱박 두 개, 세 개에다 버려진 철사 같은 것을 이어 멋진 입체촛대를 만들곤 했다. 지난해 공예품 경진대회에 낸 촛대도 조롱박 촛대에다 전에 한동안 작업했던 탈의 형상을 덧붙인 것이었다.

어느날 차씨는 버려진 나무밑둥, 썩은 나뭇가지들을 보다 한가지 기발한 착상을 했다.

어차피 누구도 쓰지않을 버려진 나뭇가지들을 도깨비작업의 재료로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조롱박의 형태를 벗어날 수 없는 도깨비얼굴에 차츰 매력이 없어가던 참이었다.

그건 정말 기막힌 생각이었다. 버려진 나무들의 썩은 부위를 다듬고 털어내고 보니 거기서 자연작품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비록 죽은 나무이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뻗은 형상이며 고스란히 남은 나무의 결이 자연 그대로였다.

막혀있던 차씨의 상상력을 다시 열어줄 싱그러운 바람이 썩은 나무일 줄이야. 하지만 대만족이었다. 어디 한군데 같은 곳이 없는 썩은 나무는 다시 작업에 신명을 실어주었다. 작업이 끝날 때마다 닮은 데라곤 없는 개성있는 놈들이 하나씩 태어났다. 어느 새 그렇게 만들어진 도깨비가 50점이 넘었다.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 도깨비와 무궁무진한 자연의 세계 나무가 만나 이제껏 아무도 본 적 없는 차종인씨의 날도깨비들이 태어나고 있다.

“이 일유? 그냥 좋아서 해유. 재미있어서. 남들은 목표도 없이 시절처럼 산다고 하지만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끝나지 않고 평생 즐겁게 할 일이 있다는 게 신나는 일이지유. 집식구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쨌건 이 일이 저한테는 낙이고 업이지유. 물론 업이라고 해봐야 담배값 정도지만 말유.”

한동안 미군부대에 계셨던 삼촌 덕에 차씨는 만든 작품들을 그쪽을 통해 선뵈고 반응이 좋은 것은 꽤 팔기도 했다. 얼마전까지는 다식판과 서울시 한복무형문화재인 이모님 편에서 괜찮은 다듬이셋트를 만들어 외국에 선뵈기도 했다.

차종인씨가 공예에 손을 댄 지는 한 20년 된다. 아는 공무원의 소개로 당진군 목공예 부업단지를 시작했는데 거액을 들이는 바람에 발목을 잡혀 여직 공간 사용료도 내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제 그쯤은 개의치 않는다. 뭘 해야지 할 때보다 내 일에 재미를 들이고 있을 때가 훨씬 생산적이었다. 빚질까봐 일을 크게 벌리지도 않고 들어오는 주문이나 받으며 정작 내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상하다보니 이렇게 도깨비처럼 도깨비작업도 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따지고 보면 목공예단지도 계기가 됐을 뿐이다. 어려서 외갓집에 살다시피 한 차씨는 그 때 썩은 나무뿌리를 다듬어 잘 진열해놓곤 하시던 할아버지를 늘상 따라다녔다. 무슨 연유인지 군대에 가서도 ‘모형배’를 제작하는 일에 투입돼 한 2년 나무를 깎은 일이 있었다. 손재주와 나무를 깎는 일은 이미 오랫동안 손에 익고 마음에도 익은 일이었다.

“저는 단순한 삶이 좋습니다. 순리대로 살자는 거쥬. 억지로 되는 일이 있나유? 땡감은 일찍 따면 떫기만 하쥬. 이왕 시작된 일, 흐르는 대로 가보는 거지유. 목표유? 내가 고기 많이 낚아야지 하면 고기가 많이 잡힙니까?”

‘도깨비 표정 하나 가지고 며칠을 고민하고 애써도 안될 일은 안되는 법’ 따라서 그런 날은 훌쩍 산에 가든지 낚시를 가는 게 차씨가 순리대로 사는 법이다. 이렇게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직업을 ‘논다’고 표현한다. 그래야 남들이 귀찮게 다시 묻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작업에 쏟는 힘과 거기서 받는 말못할 고충에 대해 괜히 남에게 너스레를 떨기 싫어서일 뿐이다.

그가 자신에게서 늘 경계하는 것은 하나에 너무 집착해서 그것이 어느 순간 공식이 되어버릴까 하는 것이다. 늘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니 앞으로 충남관광상품 전시회에 도깨비탈 화병을 내봐야지 하는 것도 그 한 과정인 것이다.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