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살았던 시대는 퍽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기록으로 남긴 역사시대보다 문헌의 자료가 없는 선사시대가 훨씬 길었다고 한다. 구석기시대는 지금으로부터 40~6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시대의 유적들이 가끔 발견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목마을에는 언제부터 인류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선사시대는 6천년 이전을 말하는데 왜목마을 주변에서 발견되었던 유적으로 패총(조개무덤)은 과연 어느 시대의 것이었을까?
패총의 조개껍질 중에는 가무락이나 굴 또는 백합껍질은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부스러질 정도로 삭아 있었고 단단한 소라껍질도 맨손으로 힘을 가하면 부러지는 것을 보았으며 어른 두 주먹을 합친 크기의 대형 패류들도 있었다. 또 큰 짐승으로 보이는 동물뼈가 30~40㎝의 길이에 5~8㎝ 정도의 굵기인데 건드리면 삭아서 부서지는 것들이었다.
한편에는 불을 지폈던 흔적으로 불에 닿아 붉게 변한 돌과 흙, 그리고 숯이 있었고 패총 근처에서 돌화살촉도 발견되었었다. 그러나 패총은 안타깝게 훼손되어 없어지고 그 화살촉은 지금 석문중학교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선사시대 주민들은 조개, 낙지, 게 등 저서생물만 포획했을까? 바닷가를 둘러보면 어류포획을 위한 시설물의 흔적이 어느 시대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남아 있다.
문헌의 기록을 보면 「석기시대인들은 조수가 드나드는 후미진 곳에 돌을 쌓아 만조시에 들어왔다가 간조시에 퇴거하지 못한 어류들을 잡기도 하였을 것이다」 에서 발췌
「원시적 어로시설의 하나로 석방렴(石防簾)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고도 하는데 연안에서 잡어 등을 잡기 위해 설치하였다. 만입한 간석지의 경사가 약간 급한 곳을 골라 반원형이나 ㄷ자 모양의 돌담을 쌓아 만들었다. 에서 발췌
문헌에서 발췌한 내용과 일치하는 시설의 흔적이 왜목마을 해변에 있다.
마을 앞바다 좌측 북쪽방향으로 500여m 정도 걸어가면 조그만한 언덕이 반도처럼 동쪽바다를 향해 돌출되어 있는데 언덕아래 예쁘게 놓여진 바위들을 보며 해안을 따라 돌면 큼직한 자갈들이 널려있는 가운데 흡사 돌담모양처럼 보이는 안으로 둥그렇게 갯벌밭이 있다.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을만한 장소라 할만하다.
멀지 않은 40여년 전에 동네어른께서 돌담 아래쪽 깊은 곳의 돌을 치우고 돌담에 어망을 달고 고기를 잡았던 일도 있었다. 지금도 옛날처럼 복원한다면 작은 잡어류는 잡힐 것은 틀림이 없을거라 사료된다.
이곳을 학술적 가치를 따져 논의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으나 이것을 복원해 관광객의 볼거리와 고기잡이 체험의 장으로 만드는 한편 학생들의 학습장으로도 활용가치는 크다고 하겠다.
학습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선사시대의 숨결을 느끼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찰 : 조선형(왜목마을 관광단지 유치추진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