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사낙안(平砂落雁) 넓은 모래벌에 기러기 내려앉고
망일서운(望日瑞雲) 망일산 봉우리엔 노을진 구름
풍도신루(豊島蜃樓) 풍도 누각은 신기루의 비경인데
총석조종(叢石潮鐘) 한여목 갯바위 넘는 물살은 거문고 타는소리
현포귀범(玄浦歸帆) 아득히 먼 바다엔 돛단배 돌아오고
석문사일(石門斜日) 저녁햇살은 석문산 자락을 감싸안는다
서해낙조(西海落照) 서해깊이 지는 해 황혼이 가득한데
보월만종(普月晩鐘)보월사 저녁 종소리 온세상을 잠재운다
시대·작자 미상
석문중학교 재학시절 학교를 설립하신 고 신이균 선생님으로부터 한문 수업시간에 교로팔경(橋路八景)에 대한 한시(漢詩)를 공부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후 사십여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지만 공부하였던 기억 뿐 한귀절도 생각이 나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모교에 의뢰하였더니 한시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퍽이나 어려운 내용을 풀어보려고 옥편과 각종 사전을 수없이 찾아보았고 교로리의 높고 낮은 산을 몇번씩 올라 살펴보며 어린시절 자연그대로 개발되지 아니한 환경을 회상하면서 시인의 마음을 알아내려고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했다.
대호방조제가 축조되기 전, 교로1리 마을앞까지 조수가 밀려들던 기억을 상기하며 현지를 돌아보고 확인해온 게 2년여 가까이 된다.
그 결과 얻어낸 것은 늦은 봄이나 초여름, 날씨는 따뜻하고 조용한 비오기 전날, 때는 늦은 오후부터 해가진 후까지이고 시인이 앉아있던 위치는 석문산 정상이었다는 결론을 얻게되었다.
작자 미상의 한시에 담긴 내용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늦은 봄날 석문산 정상에 앉아 눈을 들어 남쪽을 향한다. 교로1리와 광고판쪽을 바라보면 200년쯤 거슬러 논이 없었던 때 물새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앉는 모래사장이었던 시절이 보이는 듯하다. 이것이 제1경 평사낙안(平砂落雁)으로 가슴에 와 닿았으리라. 눈을 돌려 남서쪽을 보면 망일산에 드리워진 구름에 저녁노을이 비친 광경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제2경 망일서운(望日瑞雲)이 아니었을까.
비가 내리기 전날 바람이 없이 조용하기 때문에 수면의 아지랑이에 의해 착시현상(錯視現狀)을 일으켜 멀리있는 섬들이 여러가지 형상으로 보이는 신기루 현상을 교로리 사람들은 섬이 놀고 있다고 표현한다. 대호방조제가 축조되기 전에는 그런 현상들의 신기루를 자주 보았다. 시인은 제3경 풍도신루(豊島蜃樓)신비경에 빠졌음이 틀림이 없다.
제4경 총석조종(叢石潮鐘)은 조용한 날, 석문산에 올라 귀기울이면 문명의 소음 속에서도 지금도 한여목을 곤두박질치는 물소리가 솔바람소리처럼 들려온다. 썰물보다 밀물 때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총석은 갯바위 가무리지어 모여있는 상태로 금강산의 해금강에는 총석정이 있다. 시인은 북쪽에 위치한 한여목 물소리를 등뒤로 들었으리라.
다시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국화도 넘어 범선과 바람을 담뿍 안은 황포돛대가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모양이 자지러지게 아름답다. 옛날 교로리에서 가까운 정착지로는 국화도와 장고항이 가장 발달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국화도 근해 잔잔한 바다, 그리고 돛단배, 서정적 감정이 현포귀범(玄浦歸帆) 제5경이 아니었을까.
저녁나절 석문산 자락에 비스듬한 햇살이 신록에 역광으로 비치면 숲속에 파묻혀 안기고 싶도록 푸근하고 정겹다. 석문사일(石門斜日) 제6경은 품속같은 아늑함이 서려있다.
난지도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는 지금도 볼 수 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드는 낙조야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제7경 서해낙조(西海落照)는 오래도록 변함이 없으리라.
교로리에는 절터가 두군데가 있었는데 한곳은 발전소 부지내에 있었다. 하지만 확인하지 못했으며 다른한곳은 소루지 승적골에 가면 옹달샘과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든 흔적을 지금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그 절 이름이 보월사(普月寺)가 아니었나 추정해본다. 산새도 조용해진 해넘 이후 적막한 공간에서 여흥에 취해 있을 때 고요함을 깨뜨리는 제8경 보월만종(普月晩鐘) 종소리에 시인은 부시시 털고 일어나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누구인지도 모르게.....
살펴본 사람 : 조선형(왜목마을 관광단지 유치추진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