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

차의주씨는 언니와 함께 당진읍내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예산에서 생활했고 대학은 공주에서 다녔기 때문에 당진 태생이라 하더라도 당진에 대해서는 그리 살갑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5년전 쯤에 언니가 살고있던 당진으로 내려와 꽃집에서 종이접기를 가르치다가 같이 꽃집을 하게 되었다.

향기담기는 보통 당진 읍내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연다. 이른 아침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꽃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몸은 조금 힘들어도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 일찍 문을 여는 이유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서울에서 배달되는 싱싱하고 많은 종류의 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은 대부분 서울의 양재나 강남등 대규모 화훼단지에서 하루 두차례 오는 차로 받는다.

가끔씩 서울에서 오는 꽃 수송차 외에 근처 합덕에서 재배되는 장미나 국화를 쓰기도 하는데 서울에서 오는 꽃만큼 양이 많지 않아 물량이 딸릴 때만 조금씩 쓴다. 현재 당진 읍내에는 꽃집이 30여 개쯤 영업중이다.

꽃을 받는 사람 마음까지 생각해요

꽃집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점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세상에는 많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에 정말 만족하고 일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차의주씨가 꽃집에 있던 어느 날 말쑥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와서는 ‘저 모르시겠어요?’하더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몇년 전 여름 장마 때 비료포대에 300송이의 장미를 손에 쥐고 온 비에 흠뻑 젖은 군인이었다. 군인의 사연은 이러했다. 부대 근처의 화훼농장에서 주인아저씨가 휴가 나가는 군인에게 꽃 300송이를 거저 줬다고 한다. 비료포대 째로 애인에게 줄 수 없기에 이곳 저곳의 꽃집에 들러봤으나 사지도 않은 꽃을 포장해줄 수는 없다고 해서 ‘향기담기’ 꽃집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차의주씨는 당시 군대에 가 있던 동생 생각이 나서 뾰족이 돋은 장미의 가시를 한 송이씩 모두 손질해서 바구니에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그 뒤 제대한 청년이 인사차 일부러 꽃집에 들렀던 것이다.

차의주씨는 비록 장미 한송이 포장이라도 자신이 선물 받는다는 마음으로 다룬다. 비록 포장재료값이 꽃값을 넘어선다 해도 정성을 다 해야한다는 것이 평소 그녀의 생각이다.

내가 보는 고향 당진

차의주씨는 결혼을 해서도 당진에 계속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여러 도시에 있어봤지만 충청도 인심이 아직 남아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당진이 좋다.

당진의 쌀맛도 그 어느 고장의 쌀맛과 비할 바가 아니다. 드넓고 기름진 땅에서 나는 새하얀 당진쌀로 지은 밥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라고 한다.

이렇게 당진 예찬론자가 되버린 그녀지만 당진에 살면서 불편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편리한 대형 할인매장이나 여가시간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당진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이 날때 근처에 있는 바닷가를 즐겨 찾는다. 하지만 버스로는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많아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외에도 당진읍내에 있는 남산공원도 그녀의 단골 코스다. 마땅히 쉴 곳이 없는 당진읍내에서 비교적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 이곳이다.

당진에 대한 그녀의 바램이라면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그녀가 느꼈던 불편들이 많이 개선되는 것이다.

김진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