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북창포(굼벙골) 1 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송리북창’
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옛 면천군의 북창인 송리북창은 성구미포구, 오섬포구 등과 함께 송산면의 주요 포구였다. 가야산에서 발원하는 역천이 면 경계를 따라 북류해 남양만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의 안쪽, 깊은 내륙 쪽에 북창포구가 존재했다. 옛 송리북창은 현…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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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건 · '우현선의 포구' · 지역사회 · 최근 기사부터2 / 2쪽
2021.05.2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옛 면천군의 북창인 송리북창은 성구미포구, 오섬포구 등과 함께 송산면의 주요 포구였다. 가야산에서 발원하는 역천이 면 경계를 따라 북류해 남양만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의 안쪽, 깊은 내륙 쪽에 북창포구가 존재했다. 옛 송리북창은 현…
2021.05.1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송산방조제가 막히면 완전히 바닷물 유입이 끊기게 되었다. 명산리에는 서원포구 말고도 옛 나루터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중선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재실 전 이장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중선골은 현재는 영락없는 산골짜기다. “예전에 여기에 다랭이논이…
2021.05.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서원포구는 송산면 명산리에 1960년 중반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 작은 포구다. 주민들의 구술에 의하면 현재 송산방조제에서 2km 가량 떨어진 상류에 일명 신흥개발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바닷길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 인근 주민들은 명산리의 서원포구를 …
2021.04.2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다. 가곡리의 경우 신영개, 칠성개(칠성포)가 갯가에 있던 마을이었으나 포구로서 역할을 할 만큼 배들이 정박하고 어업생활을 하진 않았다는 것이 구술자들의 중론이다. 가곡초등학교 아랫동네를 칠성개라 불렀는데, 염전이 있었다. 하지만 문헌에 기록된 칠성각…
2021.04.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썰물 때면 오섬포구 앞 갯고랑에도 펄이 드러났다. 오섬 앞 펄에는 특히 맛조개가 많이 났다. 오섬 주민들은 ‘써개라’는 맛 잡는 도구로 맛을 캤다. 더러는 펄에 커다란 둥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앉아 맛을 잡기도 했단다. 그러다 물 들어오는 때를 놓치면 …
2021.03.2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오섬포구가 번성했던 당시 주민들 중 대다수의 남성들은 어업에 종사했다. 더러 농사를 짓는 이도 있었고, 염전에서 염부로 일하거나 어선이나 증기선이 들어올 때면 하역일에 종사하기도 했다. 선원들의 아내들은 남편들이 가져온 생선을 다라에 이고 나가 판매했…
2021.03.2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염전이 있었다. 오섬 주민들 중 여럿이 영진염전에서 염부로 일했다. 오섬포구 상류, 영진염전 뒤로 풍선이 드나들며 소금을 운반해 갔다. 염부들은 품값으로 소금을 받아 다른 곡식들로 물물교환했다는 것이 구술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1960년대에는 당시 주…
2021.03.0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나 음식점, 상점 등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대도시의 신문물도 오섬포구를 통해 당진으로 들어왔다. “그때는 미니스커트 입고 당진을 들어오는 관문이 오섬이었어요. 아이들이 놀다가도 배 들어온다고 하면 쭉 서서 구경하고 그랬어요. 여객선에는 사람 말…
2021.03.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오섬포구에 대해 구술자들이 말한 내용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50년대의 이야기다. 올해 94세인 고간난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에도 옛 기억이 또렷했다. 순성면 갈산리가 고향인 할머니는 스무 살에 오도리로 시집와 74년째 살고 있다. 할머니가 시집왔을…
2020.12.16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송악읍 도원리 출신인 송화섭 씨와 박영규 씨도 말목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말목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던 어린 시절, 윤장성 씨네 집 뒷마당에서 새우젓 담은 커다란 독을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지금 초대천 다리를 놓은 곳에 이전에도 물…
2020.12.14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송산의 아름다운 포구, 성구미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성구미 앞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건져 올리던 어민과,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포장마차의 정 많던 상인들은 모두 성구미를 떠났다. 그러나 고향 마을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름…
2020.10.31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조용한 섬마을에 개발 소식이 날아든 건 1990년대 후반 무렵이다. 행담포구 주민들에게 서해안고속도로 개발로 서해대교가 섬을 관통하게 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았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주민들 대…
2020.10.24 · 지역사회 · 당진시대
행담도 사람들의 주요 생계수단이 맨손어업이었던 탓인지 1970년대만 해도 섬에는 개인이 소유한 배가 단 한 척도 없었단다. 채취한 해산물은 평택 만호리에서 온 배가 실어 갔다. 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행담분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위해 교육청에서 마련해…
2020.10.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표선동 씨는 1975년 어머니, 아내와 함께 굴양식장을 운영하기 위해 행담도에 입도했다. 표 씨가 행담도에 들어갔을 때, 섬에는 모두 11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당진군에서 새마을주택이라고 지어준 게 있어요. 한 동에 두 집이 살았거든. 둘씩 살아서…
2020.07.2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제일농장 방조제가 막히기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음섬포구에는 어선이 많지 않았다. 구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목선 서너 척이 전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목선 조그만 걸 노 저어서 다니던 풍선 있잖어. 그걸로 새우잡이를 했어. 어렸을 …
2020.06.06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지금은 염전이라면 흔히들 천일제염을 떠올리지만, 그것 말고도 자염이란 생산 방식이 하나 더 있다. 자염은 바닷물의 염도를 높인 뒤에 끓여서 소금을 석출하는 방식이다. 화염, 전오염, 육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천일염은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 들어왔으며…
2020.04.20 · 지역사회 · 당진시대
구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맷돌포구에서 뱃고사가 이뤄졌다. 1950년대 이후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치르는 풍어제나 당제 같은 어업활동과 관련한 대규모 민속행사는 없었으나 정월대보름 풍물놀이는 행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내가 5톤짜…
2020.03.2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리 공포와 함께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다. 신평면지에 따르면 맷돌포가 포구로서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인천과 당진 일대를 운행하던 증기선을 당진지역 주민들은 ‘똑땍이’라 불렀다. 이 여객선은 당시 인천을 오가는 주요 교통수단이…
2020.02.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1960~70년대의 맷돌포구에서 잡힌 어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꽃게와 꽃새우 그리고 준치였다. 헌데 유독 ‘준치’에 관한 대목에서는 구술자 모두 군침까지 삼키며 “그것만큼 맛있는 생선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썩어도 준치’란 말을 실제 경험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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