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7 · 문화·교육 · 당진시대
[NGO칼럼] 누구를 위한 시민축제인가?
…러나 우리의 축제들은 종종 그 핵심을 놓치고 있다. 축제가 지역 주민의 손에서 기획되고 운영되기보다는 외부 총감독, 외부 용역, 외부 공연단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관객으로만 남고, 축제는 결과적으로 형식적인 행정 사업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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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건 · '손에 남는' · 문화·교육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25.11.07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러나 우리의 축제들은 종종 그 핵심을 놓치고 있다. 축제가 지역 주민의 손에서 기획되고 운영되기보다는 외부 총감독, 외부 용역, 외부 공연단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관객으로만 남고, 축제는 결과적으로 형식적인 행정 사업으로 전락한다.…
2025.01.24 · 문화·교육 · 한수미 기자
…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점점 베이글 만드는 것도 손에 익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표는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향후에는 가게 확장을 하고 싶다”며 “이번에 리뉴얼을 하면서 홀 크기가 작아져 기존 손님…
2016.10.28 · 문화·교육 · 당진시대
…구의 대부분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자기가 태어난 곳이 아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혹은 혈혈단신 낙후하고 가난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절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고된 귀향길을 나서곤 했던 사람들이 은퇴시기가 되자 고향으로 돌아…
2015.10.08 · 문화·교육 · 김예나
…을 찾아갔다.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엄마와 두 명의 고모 손에서 옥이야 금이야 길러졌다. 학창시절에는 고모가 등·하교 때마다 날 데려다주고 수업이 마칠 때까지 운동장에서 날 기다렸다 다시 집에 데려가곤 했다. 두 고모는 내가 고등학교 졸…

2015.03.20 · 문화·교육 · 한수미
… 남산스넥을 생각하면 항상 사람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 후 당진을 떠나 수년간 도시에서 생활했던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한 순간 남산스넥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 옛날 모습 그대로 남산스넥…
2014.07.19 · 문화·교육 · 김창연
…지면서 도시미관이 깔끔해졌지만 당시의 풍경을 다시 보기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며 “난시청 지역을 해소하는데 힘을 기울였던 세대로써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TV 안테나를 사용하는 곳이 없다보니 난시청 지역에서 들어오는 수리 문의는 손에…
2011.01.07 · 문화·교육 · 우현선
…에는 명절과 새해를 앞두고 의식처럼 치르던 일이 있었다. 할머니나 엄마 손에 이끌려 대중목욕탕을 가는 일이 그것이었다. 초록색 ‘이태리 타올’을 낀 커다란 손이 보드랍던 내 피부를 문지르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집에는 없던 커다란 탕 속에서 첨…
2010.07.07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내 인생의 운전대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 두고 있지 않은지, 내 인생이 어디를 향해 어떤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 여행의 행선지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적지가 되어버릴 …
2007.02.12 · 문화·교육 · 당진시대
…. 학교에 와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서너알 중 하나는 깨져 있어 알을 손에 묻혀가며 먹은 적이 있었다. 나는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 그 어려운 가정에서 담임이 왔다고 계란을 주신 그 마음이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은 내가 …
2005.10.03 · 문화·교육 · 이명자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시동생과 시누이들을 건사해야 했고 조카들까지 이씨의 손에서 자랐다. 그 와중에서도 남매를 낳아 키웠다. 하루 밥벌이도 힘든 상황에서 이들 부부가 땅 220평을 장만한 건 순전히 아내 이씨의 지혜덕분이었다. 남의 집살이로는 절대 재산…
2002.12.22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진 채로 친구의 손을 잡고 인천으로 떠났다. 그 보리 한 자루는 소년의 손에 연필 하나 쥐어주지 못했던 집에서 고학하겠다며 인천으로 떠나는 아들의 손에 쥐어준 유일한 생활비였다. 소년의 등에 업힌 보리 한 자루의 무게는 어떠했을까. 여물지 못한 여린 …
1993.11.30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다. 스물다섯에 상경했으니 십여년만에 고향에 내려오는 그로서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그나마 쥘 손마저 잃어버렸으니 참담한 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여전히 살림은 어렵고, 어릴 적 고생했던 기억만 가득한 고향이 밉기까지 했다. 열세살이었던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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