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919년 3월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의 함성은 들불과 같이 전국으로 번졌다. 그 결과 3월 10일부터 4월 13일의 한 달여 기간 동안 당진 전 지역에서도 독립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3.1운동 104주년을 맞이하여 당진지역 독립 만세운동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자 김남석 호서고 역사교사의 글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 싣는 순서>

1. 당진 3.1운동의 시발점

- 서울 3.1운동에 참여한 당진인들

2. 당진인의 문중의식과 독립정신

3. 당진 3.1운동의 유산- 화합과 통합의 정신

4. 당진 3.1운동은 최초 혹은 최대의 독립 만세운동

봄볕을 찾던 2023년 2월 14일, 대호지. 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이취임식이 대호지 농협 강당에서 열렸다. 각급 기관장을 비롯한 대호지면과 정미면의 주민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 이취임식은 여느 행사와 달리 각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기념사업회 회장이 2년을 임기로 서로 교체하기 때문이다. 정미면에서 회장을 하면 다음에는 대호지면에서 회장을 한다. 물론 기념행사의 개최도 회장을 맡은 면에서 주관한다. 이를 통해 대호지면과 정미면의 화합과 통합을 체험하고 공동체임을 확인한다.

원래 대호지면과 정미면은 순치(脣齒)의 관계였다. 말이 두 면이지 실제로 한 면과 같다. 일전에도 서술한 바와 같이, 두 면은 조선시대 내내 해미현에 속해 있었다. 대호지면 주민들은 정미면을 거치고 운산면을 거쳐 해미 읍내까지 가서야 행정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지역의 유림(儒林)은 같은 길을 통해 해미향교에 갔고, 그곳에서 강론(講論)하였음이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화서학파의 대학자인 유진하(兪鎭河, 1846~1906) 선생도 운산면 거성리에 자리를 잡자마자, 정미면과 대호지면에 제자를 양성하여 화서학파의 척사정신을 뿌리내리게 하였다. 이러한 것은 두면 간의 일체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발원하여 정미면 천의 장터에서 봉기한 독립만세 운동은 여러 부분에 있어 ‘화합과 통합’을 주제로 하였다. 애당초 만세운동을 기획한 대호지면 유생은 대호지면 송전리에 웅거하고 있던 천도교 세력과 화합을 꾀하였다. 대호지면의 유림이 강했던 만치, 송전리의 천도교도 당진과 서산을 아우르는 강한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종교는 조선시대 전통적 인식에 많은 견해차를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갑오년(1894)의 동학농민운동을 억압한 세력 중 하나가 유림이 구성한 유회군(儒會軍)이었다. 이 때문에 두 세력 간의 갈등은 적잖이 드러나곤 하였다. 하지만, 두 종교인은 ‘독립’이라는 대전제 아래 거리낌 없이 통합하였고, 만세운동의 결속을 강화하였다. 이로써 ‘종교 간의 화합과 통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대호지면의 면 직원들은 전 주민과 함께함으로써 ‘민관 통합’을 추진하였다. 면장과 구장(이장)에서 시작해 마을주민으로 연결되는 행정망은 만세운동의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다. 대호지면 주민은 앞장선 이인정(李寅正, 1859~1934) 면장의 뒤를 기꺼이 따랐다. 면사무소의 행정력은 주민과 함께 할 때 비로소 기능을 빛나게 한다. 마지막으로 대호지면민은 정미면 천의 장터에 진출하고 정미면민과 함께 봉기함으로써 ‘지역 통합’을 일구어냈다. 천의 장터는 정미면민의 오일장이라기보다 대호지면민과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아울러 장날의 만세운동은 곧바로 횃불 시위로 계승되었고, 정미면 수당리의 봉화산 봉화 시위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로써 두 면은 한 면이 되었다.

올해, 당진시에서는 대호지. 천의장터 4.4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면천 3.10학생만세운동 기념관도 곧 조성될 태세다. 이제 우리 고장도 만세운동 기념관의 건립 분위기에 동참한 것이다. 두 면의 기념사업회가 변변한 사무실 한 곳 없이 유랑하던 처지를 면할 기회다. 성역화 사업의 원만한 시행을 기원함은 당연하지만, 대호지면과 정미면의 ‘화합, 통합’의 기억을 오래도록 새겼으면 좋겠다. 특히 양극화로 찌든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들끓음을 통합하는 교훈으로도 길이 인용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측면에서 대호지. 청미 4.4 독립만세운동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