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인과 얘기하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퇴직하고 한 달에 서너 권의 책을 읽는다며 은근히 독서를 많이 하는 것에 자부심을 내비쳤다. 주로 무슨 책을 읽느냐는 내 질문에 소설, 시 같은 문학 작품만 빼고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가 읽는 책들은 미술사,경제, 주식, 텃밭 기르기, 여행, 역사, 사회과학, 에세이 같이 주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말 속에는 문학은 자신의 삶에 별다른 도움도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지인에게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에 사끄러운 카페에서 진지하게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퇴직한 지인에게는 당장 이것 저것 배우고 싶은 것들을 접해보는 것이 우선이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최근에 읽은 소설은 일본 작가인 나쓰메 소스케가 쓴 <마음> 이다. 나쓰메 소스케는 일본 지폐에 실려있을 정도로 일본인의 존경을 받는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다. <마음> 의 주인공은 도쿄제국대를 졸업한 나이 지긋한 지식인으로 평생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아내와 단 둘이 산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친구가 묻힌 묘지를 빠지지 않고 방문한다. 그는 비사교적이며 스스로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존경을 받을만 하지만 그는 세상에 대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기에 매달 친구의 묘지를 찾아가고 세상과 단절하다시피 자신을 고독속으로 몰아가며 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이유를 알고 싶어 책을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다. 주인공 부부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다며 나름의 고통을 하소연한다.

주인공은 마침내 유서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생을 끝낸다.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이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뜨자 숙부와 친척들의 보호 아래 자란다. 그러나 믿었던 숙부가 대부분의 재산을 가로채자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대학생이 되자 친척과 결연하고 하숙집을 구해 살게 된다. 그는 하숙집 딸을 좋아하게 되고 하숙집 아주머니도 자신을 사위로 삼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을 믿지 못하던 그는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러던 중 그는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는 고향 친구를 하숙집에 데려와 같이 살게 한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고향 친구는 학문과 정신적 수양에 집중하는 진중한 청년이었다. 어느 날 고향친구는 주인공에게 하숙집 딸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다. 그는 충격을 받았고 하숙집 딸을 친구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질투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는 친구가 모르게 선수를 쳐서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여 허락을 받는다. 친구는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그 소식을 듣고 자살한다. 단 하나 뿐인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그로 인한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에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를 죽음으로 유도했다고 여긴 주인공은 자신이 고결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숙부와 다름없는 악인임을 깨닫는다. 아무리 선량한 인간이라도 어떤 계기로 인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절감한다. 그는 자기 합리화나 도피 없이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평생을 죄책감과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솔직하다고 고백하고는 마침내 목숨을 끊는다.

주인공의 생각과 언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저 깊은 곳에 처박아둔 나의 과거와 맞닿게 된다. 평소에는 선량했지만 경쟁자에게는 어느 순간, 치졸했고 비겁했고 냉정했던 기억을 일깨우게 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하게 된다. 이처럼 소설은 이론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물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독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이처럼 진지하고도 생생하게 표현하는 소설을 허구의 세계라고 등한시하지 말아주기를 지인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