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광양시가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당진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두 도시는 모두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산업도시다. 그러나 정부의 판단은 엇갈렸다. 광양은 지정됐고 당진은 아직 지정 문턱에 서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지역 간 비교를 넘어, 정부가 산업위기를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당진이 그 기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되짚게 한다.
‘위기 가능성’이 아닌 ‘위기 징후의 수치화’
광양을 비롯한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을 취재해 본 결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으로 핵심은 ‘선제대응’이다. 정부는 최근 제도 운영 과정에서 △지역 주력산업 의존 구조 △생산·고용·사업장 수 감소 등 정량 지표 △현지실사 및 산업위기대응 심의위원회 판단을 종합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중요한 점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아니라 “위기가 이미 진행 중임을 수치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기준이 광양과 당진을 가른 가장 큰 잣대였다.
광양은 왜 지정됐나
광양의 경우 행정에서 정부로 철강산업 의존도를 명확한 수치로 제시했다. 광양은 지역 전체 산업 생산의 88.5%, 수출의 97.5%가 철강산업에 집중돼 있는 구조다. 철강 업황 악화가 발생하면 지역경제 전반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수치로 입증됐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 과잉, 수출 단가 하락, 내수 부진, 통상 환경 변화 등 외부 요인이 겹치며 철강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가시화됐다는 판단이 더해졌다. 광양의 지역 언론과 정부 자료는 공통적으로 “철강산업 부진이 곧 지역경제 위기로 직결되는 도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광양은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현지실사와 심의위원회 절차를 거쳐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됐, 이후 금융·보증·고용 안정·투자 유인 등 종합 지원을 받는 체계에 들어갔다.
당진은 왜 아직인가
당진 역시 철강산업 의존도가 매우 높다.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철강 및 관련 산업이 지역 제조업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협력업체와 지역 상권까지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당진시에 따르면 매출 감소, 가동률 조정, 협력업체 경영난, 고용 불안 등 위기 신호는 현장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 판단에서 당진은 광양과 같은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왜일까? 이유는 명확하다. 위기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정부 기준에 맞춘 ‘정량 자료 패키지’가 충분히 제출·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량 자료 패키지’란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심의할 때 정부가 체감이나 우려가 아니라 수치로 확인되는 위기인지 판단하기 위해 요구하는 핵심 통계 묶음을 말한다. (공식 용어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와 심의위원회가 실제로 판단에 사용하는 자료들을 묶어 부르는 실무적 표현)
광양 사례로 본 당진이 취해야 할 선택
광양 사례를 보면 당진이 앞으로 취해야 할 방향도 분명해진다. 광양의 지역 언론사의 자료와 정부의 광양 선정 이유를 대입해보면
첫 번째는 철강 의존도, 제조업 기준이 아닌 지역 전체 기준으로 재정리를 해야한다.
광양은 생산·수출·고용 전반에서 철강 의존도를 제시했다. 당진 역시 제조업 내 비중을 넘어 지역 전체 산업 구조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을 명확히 산출·제시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위기 징후를 체감이 아닌 수치로 묶어야 한다.
매출 감소, 가동률 하락, 고용 축소, 협력업체 휴·폐업 등 개별 사례를 나열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최근 3~5년 추세를 보여주는 공식 통계로 정리해야 한다. 이는 심의위원회 판단의 핵심 자료가 된다.
세 번째는 협력업체·소상공인 피해를 산업 문제로 연결해야 한다.
광양은 철강산업 부진이 협력업체와 지역경제로 확산되는 구조를 강조했다. 당진 역시 철강 산업 → 협력업체 → 상권 → 고용으로 이어지는 파급 구조를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는 시 단독이 아닌 충남도와 당진시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광양은 전남도와 광양시가 함께 움직였다. 당진 역시 충남도 차원의 공식 참여와 공동 건의가 병행될 때 정부 설득력이 커질 수 있다.
다섯 번째는 노동·행정·경제계 연대를 지속적인 자료 생산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미 당진은 지난 13일 노동계, 행정, 상공회의소, 소상공인연합회가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연대의 틀을 만들었다. 이제 이 연대를 정부 제출용 근거 자료를 생산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는 당진을 선정해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제도의 목적은 명확하다. 위기가 완전히 터진 뒤의 사후 지원이 아니라, 지역경제가 무너지기 직전에 개입하는 것이다. 광양이 지정된 이유도 바로 ‘선제대응’ 여기에 있다. 당진은 이미 노동·행정·경제계가 한목소리로 “지금이 선제 개입의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광양 사례가 보여주듯 필요한 것은 더 큰 위기가 아니라 정부 기준에 맞춘 판단과 결단이다.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이 진정 ‘선제’를 의미한다면 정부는 이제 당진을 선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