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경,하군배의 공주지방재판소 판결(1909.5.28., 출처:국가기록원)
정선경,하군배의 공주지방재판소 판결(1909.5.28., 출처:국가기록원)

일본 제국주의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퇴위시켰다. 곧이어 일제는 정미조약을 강제 체결하였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해산 군인들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항쟁하였고, 곧바로 서울 주둔 시위대(侍衛隊)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시위대의 봉기 소식은 각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전해졌고, 각지의 의병들은 해산된 진위대 군인들과 연합하여 의병 전쟁으로 확산시켰다. 이른바 1907년의 정미의병(丁未義兵)이다.

석문면 출신의 정선경(鄭善京)과 하군배(河君輩)는 1907년 최종성(崔鍾成)이 이끄는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최종성은 고대면 용두리 출신 정주원(鄭周源) 의병장의 부하인데, 경기도 죽산군(竹山郡, 현 안성시 죽산면)ㆍ양성군(陽城郡, 현 안성시 양성면)ㆍ양지군(陽智郡, 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및 충남 당진군(현 당진시)ㆍ서산군(현 서산시) 일대를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정주원 의병장은 1907년 8월 죽산에서 봉기한 후 죽산ㆍ양지ㆍ수원ㆍ안성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07년 11월에는 충남 당진ㆍ서산 일대로 이동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정주원 의병부대가 당진으로 이동했을 때, 정선경과 하군배는 당진군 행정리(현 당진 1동 행정동) 출신의 심주현(沈周鉉)과 함께 선두에서 활약하였다. 이들은 1908년 5월 3일 밤, 최종성의 지휘로 당진주재소(현 당진경찰서)를 공격하여 친일 순사 유희령(柳熙零)을 처단하였다.

하군배의 경성공소원 판결서(1909.7.23., 출처:국가기록원)
하군배의 경성공소원 판결서(1909.7.23., 출처:국가기록원)

정선경과 하군배는 1909년 1월 당진군 외맹면(外孟面, 현 당진시 석문면) 송당리(松唐里)와 외창리(外倉里)에서 군수물자로 당목(唐木) 35척, 주의(周衣) 1개 및 잡품 여러 점을 징발하였고 군자금으로 현금 3원을 모금하였다. 이어서 5월에는 외맹면 찬동(讚洞)에서 당진주재소 순사를 상대로 동료 의병 20여 명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정선경과 하군배는 심주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정선경은 곧바로 재판에 넘겨졌고, 1909년 5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하군배도 같은 날에 심주현과 함께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하군배는 곧바로 상급심에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7월 23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열렸는데, 항소는 기각되었고 결국 옥고를 치렀다.

정선경과 하군배의 집안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없다. 1909년에 작성된 공주지방재판소 판결에 의하면, 정선경은 1909년 당시 47세로 기록되어 1863년생으로 추정될 뿐이다. 거주지도 당진군 외맹면(外孟面) 찬동(讚洞)이라는 점만 기록되었다. 하군배도 개인 이력을 알 수 없지만, 정선경과 같은 문건에 의하면 1909년 당시 57세로 기록되어 1853년생으로만 추정된다. 하군배의 다른 이름은 하군규(河君奎)이며, 거주지는 정선경과 같이 외맹면 찬동이다.

당진군 외맹면(外孟面)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고산면(高山面)ㆍ내맹면(內孟面)ㆍ도동면(島洞面)과 함께 당진군 석문면(石門面)으로 통합된 곳이다. 또한 찬동은 외맹면 송당리(松堂里)ㆍ외창리(外倉里)ㆍ삼화리(三花里), 그리고 고산면 유치리(油峙里) 일부와 함께 석문면 삼화리(三花里)가 되었다. 현재 삼화리는 3리까지 있는데, 1리는 삼꽃마을, 2리는 외창마을이다. 찬동마을은 보덕포와 함께 3리에 해당한다. 찬동(讚洞)은 ‘칭찬하는 마을’이란 뜻인데, 정선경과 하군배도 진정 칭송받아야 할 애국지사라 하겠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선경의 항일 의병이라는 공훈을 기려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고, 하군배에게도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석문면 삼화3리 마을회관(삼화리 356-3)
석문면 삼화3리 마을회관(삼화리 356-3)
보덕포 나루터 흔적(보덕사 앞)
보덕포 나루터 흔적(보덕사 앞)
보덕포 나루터 앞에 있는 보덕사(삼화리 207-36)
보덕포 나루터 앞에 있는 보덕사(삼화리 20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