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당진은 오랜 기간 대한민국 전력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전선로는 지역에 남았고 생산된 전기의 혜택은 수도권으로 향했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당진시대는 송전선로 문제를 단순한 시설 입지 갈등이 아닌 지역 불균형과 에너지 전환의 문제로 보고 연재를 이어왔다. 마지막 순서는 ‘해법’이다. 전문가들은 더 많은 송전선로 건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이 활용하는 분산에너지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당진은 전국 최대 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자리한 대표적인 발전도시다. 수십 년 동안 국가 전력 공급을 책임져 왔지만 생산된 전기의 상당수는 수도권과 대도시로 공급됐다. 지역에는 발전소와 송전탑, 송전선로가 남았고 환경 부담과 주민 갈등 역시 함께 남았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에너지 고속도로’와 대규모 송전망 확충 정책 역시 비슷한 논란을 낳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명분은 공감하지만 결국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유종준 충남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당진은 오랫동안 전기를 생산해 왔지만 정작 그 전기를 지역 발전에 활용하지 못했다”며 “석탄화력발전소 시대에도 그랬고 자칫하면 재생에너지 시대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되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지금처럼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당진은 또다시 발전시설과 송전시설만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 지역에서 쓰는 ‘지산지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지산지소(地産地消)’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우선 소비하는 방식이다. 원래 농업 분야에서 사용하던 개념으로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뜻이지만 최근에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같은 개념이 적용되고 있다.
유 사무처장은 “당진이 생산한 전기를 당진에서 먼저 사용한다면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도 줄일 수 있고 전력 손실도 감소한다”며 “무엇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산업 유치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와 산업계는 RE100을 중요한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국제 캠페인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역시 재생에너지 확보 여부가 투자 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황성렬 충남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는 “재생에너지는 단순히 판매할 전기가 아니라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자산”이라며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당진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상풍력이나 태양광 발전단지가 들어서면 전기를 판매하는 데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그 전기를 활용할 기업을 함께 유치해야 지역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당진은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해 기업 유치가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진이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당진은 국가산업단지와 현대제철, LNG 기지, 항만, 고속도로, 철도망 등 산업 기반이 집적된 지역이다. 여기에 전국 최고 수준의 송전망과 전력 인프라까지 갖추고 있다.
황 상임대표는 “당진은 산업도시로 성장하면서 이미 기본적인 정주 여건과 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재생에너지와 산업 기반을 결합한다면 충분히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이라고 말했다.
실제 당진 역시 현대제철이 들어선 이후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을 경험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이 들어오면 인구와 인프라도 함께 성장하는 만큼 단순히 현재의 인구 규모만으로 기업 유치 가능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지역별 전기요금제 필요성도 제기
지역별 전기요금제 역시 대안으로 거론된다. 현재는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사실상 같은 전기요금을 적용받고 있다. 하지만 발전소와 송전선로가 집중된 지역은 환경 피해와 재산권 침해 등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황 상임대표는 “전력 생산지 주민들은 발전시설과 송전선로를 감내하면서 국가 전력 공급을 책임져 왔다”며 “생산지의 부담과 기여를 전기요금 체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별 전기요금제는 단순히 전기요금을 낮추는 개념이 아니라 전력 생산지에 대한 실질적 보상과 산업 경쟁력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충남과 당진, 이제는 당사자로 나서야
전문가들은 송전선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국가 정책이라는 이유로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지역의 미래 산업 전략과 연계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종준 사무처장은 “충남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발전시설과 송전망이 집중된 곳”이라며 “이제는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는 지역으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송전선로 문제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 먹거리와 산업 구조를 결정하는 문제”라며 “충남도와 당진시,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석탄화력발전소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시대에도 충남과 당진이 단순한 전력 생산지와 송전 통로에 머문다면 지역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유종준 사무처장은 “당진은 지금까지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역할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생산한 전기를 바탕으로 기업과 일자리를 유치하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며 “전기를 보내는 도시가 아니라 전기를 활용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렬 상임대표 역시 “재생에너지는 팔기 위한 전기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만드는 자산”이라며 “좋은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전기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당진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진정한 에너지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당진이 생산한 전기가 더 이상 수도권만 밝히는 전기가 아니라, 당진의 일자리와 산업, 미래를 밝히는 전기가 돼야 한다.” 송전선로 연재를 마무리하며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던진 메시지다. 충남과 당진이 더 이상 전력의 통로가 아닌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