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고교야구에서 빚어진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광주일고를 향한 도 넘은 조롱 응원 사태는 우리 사회에 무거운 충격과 씁쓸함을 안겼다. 학생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쏟아낸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은 단순한 청춘들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그 수위가 몹시 위태로웠다. 그러나 분노의 화살을 온전히 아이들에게만 돌리기 앞서, 우리는 이 참담한 풍경이 과연 누구의 거울인지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는 다름 아닌, 기성세대의 천박한 승리지상주의와 혐오 문화가 투영된 ‘어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론의 장과 온라인 공간은 타인에 대한 날 선 혐오와 조롱, 상대를 짓밟고서라도 우위를 점하려는 어른들의 천박한 논리로 오염되어 있다. 스펀지처럼 세상을 흡수하는 아이들은 이러한 기성세대의 그릇된 소통 방식을 아무런 여과 없이 체득한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과오를 질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사회의 어떤 폭력적 기류를 오독하였고, 그것을 야구장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상황에 어떻게 잘못 대입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뼈아픈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는 스포츠맨십 대신, 혐오를 동력 삼아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을 택한 아이들의 모습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어른들의 민낯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가슴 아픈 파음(破音)이다.
이 사건으로 해당 학교 야구부 학생들에게는 ‘6개월 출전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대학 진학과 프로 지명이라는 인생의 분수령에 서 있는 고교 선수들에게 6개월의 공백은 사실상 치명적인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들의 행위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책임은 마땅히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교육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 징계의 본질적 의미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아가 채 완성되지 않은 미성년자들이 맹목적인 경쟁의 압박 속에서 저지른 일탈을 두고, 이들이 훗날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진출할 기회마저 꺾어버리는 거대한 걸림돌을 놓는 것이 과연 온당한 '교육적 처사'인가. 징계의 궁극적 목적은 기계적인 ‘단죄’와 ‘배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남긴 상처를 성찰하게 하는 ‘교화’와 ‘회복’에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영구히 매장하는 방식의 징계는, 어른들이 져야 할 구조적 책임을 아이들의 희생으로 면피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수 있다.
결국 이 비극의 근저에는 학생선수들의 올바른 성장을 이끌어야 할 책무를 철저히 방기한 어른들의 직무 유기가 자리하고 있다.
첫째, 현장 지도자들의 비겁한 묵인이다. 그라운드에서 조롱의 합창이 울려 퍼질 때, 이를 즉각 중단시키고 호통쳐야 할 이들은 벤치에 앉은 감독과 코치진이었다. 기술의 전수에만 매몰되어 스포츠의 숭고한 정신과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가르치지 않은 지도자는 교육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둘째, 학교와 교사들의 방관자적 태도다. 오늘날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는 학교에서 운동부는 일반 학생들과 철저히 단절된 '외딴섬'으로 전락했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학교는 대회 성적과 우승기에만 매달릴 뿐, 학생선수들이 그 고립된 공간 속에서 어떤 기형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책임을 내팽개친 것이다.
셋째, 가장 무거운 책임은 국가 교육 시스템을 관장하는 교육부를 향한다. 수십 년간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폐단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형식적인 인권 교육이나 최저학력제 도입 등 미봉책에 머물렀다. 운동하는 기계로 전락한 체육부 학생들을 입시와 성적의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이들이 사회적 가치를 함양할 수 있는 실효적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국가 교육 시스템의 참패다.
배재고와 광주일고의 경기에서 불거진 조롱 사태는, 상대를 짓밟아야만 내가 살아남는다는 우리 사회의 비정한 생존 논리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6개월의 징계를 짊어진 채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어린 선수들에게, 지금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서늘한 손가락질이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잘못 보여주었는지 통렬히 반성하는 기성세대의 반성문이 먼저 쓰여야 한다. 나아가, 징계의 시간이 아이들에게 단순한 처벌의 굴레가 아닌,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우고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세밀한 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이 경쟁을 하기전에 먼저 모자를 벗고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여 존경과 배려를 표하는 행위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인지부터 가르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