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학교를 두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스타벅스’라는 표현을 사용해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학생 문화와 학교 간 갈등을 보여 주는 사례로 크게 다뤘지만,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예상보다 빠르게 잊혔다. 며칠 동안 온라인에서 웃고 떠들다 끝나는 하나의 밈(meme) 정도로 소비되었을 뿐, 그 사건이 가진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요즘 또래 학생들을 보면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가볍게 소비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큰 사회적 사건조차 잠시 인터넷에서 웃고 즐기는 콘텐츠가 되었다가 금세 잊히는 일이 반복된다. 물론 모든 청소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학생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사회 문제보다는 자신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경향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을까? 나는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한국 교육이 만들어 낸 치열한 경쟁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열은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빡세기로 유명하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치열하게 살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자녀에게 가장 쉽고 유일했던 성공 방정식인 '공부'를 시켰다. 공부만 잘하면 성공이 보장되던 세대였기에, 그 시절의 아이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 부모가 되어 낳은 자녀들이 바로 현재의 십대들이다.
현재 십대의 부모 세대는 '공부만 잘하면 성공하는 시대'를 겪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도 공부를 강요한다. 하지만 지금 세대에게 성공은 더 이상 공부가 보장해 주지 않는다. 공부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 AI의 등장으로 다양한 산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자신의 직업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불안이 가득하다. 게다가 한국 교육은 현재 아이들에게 더욱 빠른 진로 확정을 요구한다. 아직 십대인 아이들 중 본인이 하고 싶은 직업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아이는 몇 없다. 최소한 내 주변은 그렇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은 자신을 먼저 지키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생존과 성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고, 사회 전체의 문제에는 점점 관심을 잃게 된다. 타인의 어려움이나 공동체의 문제보다 내 성적, 내 진로, 내 미래가 우선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라도 수입이 적거나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판단되면 쉽게 포기하는 모습 역시 이러한 불안에서 비롯된 물질주의적 사고의 한 면모라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자기보존적 개인주의’는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일이라면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에 언급했던 사건이 또래들 사이에서 금방 잊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건의 옳고 그름을 고민하기보다 잠시 재미있는 이야기로 소비한 뒤 관심을 거두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깊이 생각할 여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현실이 만들어진 셈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청소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경쟁과 불확실성 속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사회가 끊임없이 더 좋은 성적과 높은 경쟁력을 요구하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을 우선하는 태도가 생기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단순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은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뿐만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공감 능력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학교 역시 성적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회를 이해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타인에 대한 공감은 성적처럼 수치로 평가되지는 않지만,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가치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자신만을 지키려 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고민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도 함께 배울 수 있을 때, 비로소 개인의 성공과 공동체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