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여년간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홍일초 의병장 휘하 이름 없는 의병들의 항전과 희생이 실제로 소난지도에서 존재했다는 사실이 1908년 일본 경무국에서 발간한 『폭도에 관한 편책』 중 「홍주분서장 보고」 등을 통해 입증됐다.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김상기 소장은 지난 13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소난지도 의병항쟁 학술용역 최종보고회에서 소난지도가 1906년 이후 내포지역에서 의병활동의 주요한 근거지였음을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시켰다.
이번 보고회의 총책임을 맡은 김상기 소장은 『당진 소난지도 의병항쟁 - 학술고증 용역보고서』를 통해 의병들이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인근 당진·서산·태안 등 내포지역은 물론, 화성과 수원 등 경기 지역에까지 해상으로 이동하면서 의병투쟁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또한 소난지도 일대가 ‘활빈당(活貧黨)’의 일종인 수적(水賊)의 활동지였으며 의병장 홍일초가 소난지도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탈출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항일운동을 재개하고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제암리교회에서 부인과 함께 순국한 사실 등이 밝혀졌다.
『폭도에 관한 편책』에 따르면 당시 전투로 선봉장 박원석을 비롯해 의병 총 41명이 전사하고 9명이 부상을 입고 체포, 50명 내외가 바다에 투신해 행방불명됐다고 적혀 있다. 또한 홍주 경찰분서에서 파견된 경찰 15명 중 1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 서적에는 특히 당시 전투상황을 소상히 표현한 ‘소난지도 의병 전투상황도’가 함께 실려 있다.
이번 소난지도 의병항쟁 최종보고회를 통해 그동안 구전으로만 알려져 온 사실이 명확한 고증을 통해 밝혀짐에 따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지로서 소난지도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활발한 논의가 기대되고 있다.
홍정연 기자 jyhong@dj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