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농민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16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농업인들의 반대를 의식해서 FTA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한편으로는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사과, 배는 협상에서 제외했으며 고추, 마늘, 양파 등 민감한 품목은 DDA협상 이후 다시 논의키로 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FTA 지원기금을 설치하고 부채경감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였으며 개방 확대에 대비하여 향후 10년간 119조원 규모를 투자하는 후속조치도 차질 없이 시행하겠다고 하였다.
불신받는 농업정책
그러나 농촌에서는 정부의 대책이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농정당국이 농업인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은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결과이다. 우루과이라운드 출범 이후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농촌에 몇십억원을 투입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였다. 물론, 정부의 투융자 확대로 인해 규모나 생산성 면에서 진척이 있었지만 우리 농업과 농촌이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10년전 구조개선사업을 추진하면서 개방에 대비해 농업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지만 지금 그 말을 믿는 농민은 아무도 없다.
보다 획기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방식과 같은 지원만으로는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농업을 걱정하는 양식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정부는 농업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농업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명맥을 이어오고 국민의 식탁에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지원보다 농업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언론도 농업인들을 도시민과 대척점에 있는 국수주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식의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농업가치에 대한 정당한 지원 필요
정부와 기업인, 그리고 도시 소비자들은 지난번 미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났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 농업인들이 안전한 한우를 생산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언론과 많은 소비자들은 정부를 비판하고 아우성을 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농업은 존재가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기와 다이아몬드의 역설과 같은 것이다. 공기는 살아가는데 없어서 안 되지만 다이아몬드처럼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 농업도 중요성에 비춰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공기도 공짜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대기정화 비용을 지불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농업이 제공하는 무형의 가치에 대하여 소비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정부는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단지, FTA 때문이 아니라 농업의 근본적인 회생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농업과 농촌이 국가 유지에 기여하는 만큼이면 된다. 농업인들은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시혜적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필자는 농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그 것이 바로 도시와 농촌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