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일 당진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동안 삼복더위를 수원자택에서 무사히 지내고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9월4일에 송산면민 체육대회가 열린다면서 도문리 노인회장 이재용(李載龍, 75)씨는 밤마다 송산중학교 운동장에 나가 동네 부인들과 줄넘기 등 각종 운동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3일쯤해서 수원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모처럼 고향의 운동대회에 참석하기로 하고 그날밤을 도문리 큰댁에서 쉬게 되었다.

송산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깔끔하게 차린 한 노년 선비를 만났다. 다름아닌 27회 동창생 김대기(金大基, 67)씨였다. 반갑게 만나 악수를 나눈 뒤 운동대회장으로 진입했다.

그러고 보니 도문리 본부석 우편에는 명산리·상거리·송석리, 좌편에는 삼월리 본부석 등이 마련돼 있었다.

삼월리 본부석을 살펴보니 송산초교 27회 동창생인 김대기·조병훈·김철묵·김근묵·이범국씨 등이 많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모두 66~67세의 할아버지들였다. 3년만 더 살게 되면 70세인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간칠십종심욕불유구(人間七十從心欲不踰矩)라 했다. 인간 70세가 되어 마음대로 행동을 하여도 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과연 나를 비롯해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 자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몸은 늙었는데 해놓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27회 동창생 이후의 팔팔한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나는 열다섯살에 학문을 하기로 뜻 세우고 (孔曰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가 되어 자주독립하였고 (三十而立) 40세가 되어 동요하거나 방황하지 않는 불혹의 경지에 이르렀고(四十不惑), 50세가 되어 천명을 깨달았고(五十而知天命) 60세가 되어 모든 일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었고(六十而耳順) 70세가 되어 마음대로 행동을 하여도 도에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 문장은 평범한 듯하면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