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례없는 풍년이라는 기대속에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다. 본격적인 쌀시장 개방을 맞아 풍년이 들었다고 즐거워만 할 수 없는 우리나라 농심이 이제는 더이상 일그러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어느 하루 어렵지 않게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네 서민들에게 이번 추석인들 바램대로 그렇게 넉넉할 수가 있을까마는 이즈러진 달이 만월을 향해 차오름에 따라 그 옛날 뒷동산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달집을 태우며 기원하던 그 아련한 소망을 나는 가슴에 가져본다.

이번 추석이 지나고 내년부턴 이나라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풍요나마 넉넉하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돈이 많지 않아도 나름대로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의가 살아있고 검소한 선비의 기개가 존경받는 그런 나라, 그래서 가난하더라도 비굴하지 않게 삶을 보람있게 가꿀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할텐데, 나는 단정코 그 힘의 근원을 정통성과 정당성에서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이나라 정치의 최대의 화두인 과거청산을 놓고 나라도 어려운데 왜 지난 일에 얽매여 있어야 하느냐는 힐난을 가끔 듣는다. 물론 그 말에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해방직후를 비롯, 유신정권시절이나 5, 6공시절의 담론과 똑같을 수 있을까?

인간사 불행하게도 당위와 존재의 법칙의 괴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지만, 그 괴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역사를 발전시켜나가게 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을 때 판사는 당연히 “돈갚아!”하지만 (당위의 세계), 막상 돈 줄 사람이 “돈없어! 배째!”(존재의 세계)라고 한다고 해서 “돈갚아!”의 절차도 밟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법과 정의가 무시되는 게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마찬가지로 경제가 어려우니 수십년 된 역사문제 끄집어낼 것없이 먹고 살 궁리나 하자고 한다면 이 사회에서 더이상의 정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는 털고가야 할 짐을 그동안 당연스레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자. 일제에 붙어 민족을 배반한 무리들이 나라형편 경제상황 운운하며 호의호식해온 우리의 과거사,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그 “돈갚아!”의 과정을 거치고자 하는게 당연한것 아닌가? 다소 어려워도 진정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냉정히 따져보자. 우리나라의 거시적 경제상황이 애쓰면 되고 애 안쓴다고 안되는 그런 구조가 아니잖은가? 대외의존형 수출주도 경제이다 보니 싫든 좋든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여건변화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가 아닌가 말이다.

너무 경제경제 호들갑 떨지 말고 어떻게 하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방법이 없잖은가? 우리 모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분수에 넘는 사치를 배격하는 철저한 선비정신을 키워나감으로써 힘을 키우는 도리밖에.

옛말에, 가정이 어려울 때 열녀가 나오고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이 나온다고 했는데, 유신의 망령이 극에 달하던 1975년 8월, 친일 모리배들에 정면으로 싸우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고 장준하 선생이 참으로 애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