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설적인 역학자로 유명했던 구월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지금으로부터 십여년전 일이다. 평양에서 월남하여 지금은 탄탄한 사업체를 일구어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김사장이란 분을 통해서 였다.
평양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김사장은 일제시대 미국산 할리 오토바이를 타고 평양시내를 질주하던 풍류남아였다. 넉넉한 가산으로 평양의 유명한 술집을 드나들며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낼 적에 갑자기 해방이 되고 북한정권이 들어섰다. 도처에서 인민위원회가 구성되고 토지개혁과 지주 숙청작업이 진행되면서 김사장은 월남을 결심하고 토지문서와 가보 몇 개만을 보따리에 싸서 서울로 부랴부랴 내려왔다고 한다.
생활이 궁핍해지자 얼마간의 토지를 매각하기로 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으나 38선이 확정된 뒤 북쪽의 토지를 사려는 사람이 나올 리 만무했다.?상심한 채 고서화를 비롯한 가보들을 뒤적거리다가 자신의 부친이 구월산인이란 사람으로부터 받아놓은 자신의 총평 사주를 발견했다고 한다.
1945년 을유년부터 시작해서 1948년 무자년에 이르는 구절에서 구월산인은?‘임진이북 재작호지 이토남방(臨陣以北 再昨胡地 移土南方)-임진이북은 오랑캐땅이 되리니 흙을 남으로 옮겨라-'이라고 적혀있지 않았는가.?김사장은 이를 보고는 땅을 쳤다고 한다.
‘좀더 일찍 이 구절을 읽어서 서울에 땅을 좀 사놓았더라면...'
그 다음부터 김사장은 구월산인의 기록을 신주 모시듯 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구월산인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50년 전쟁이 터지고 김사장은 영남의 처갓집으로 피난을 내려오게 되었는데, 처갓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다보니 거기에도 다른 친척들이 피난 중이라 더 이상 머물기가 어려워 아예 부산으로 내려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작정으로 짐을 싸서 떠났다고 한다.?그런데 그 해의 기록에 구월산인은 ‘호인문도 물승동주(胡人問道 勿乘同舟)-오랑캐가 길을 묻거든 같은 배에 타지마라-'라고 써놓았다.?이 구절을 아예 외우고 다니던 김사장은 낙동강 나루터에서 과연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길을 묻는 상황에 직면했다.?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그 구절.?김사장은 동행을 거부하고 무조건 다시 처갓집으로 발길을 돌리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가솔들을 재촉해서 발길을 돌리던 그는 잠시후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듣게되었다.?너무나 많은 피난민을 싣고 가던 나룻배가 중간에 그만 전복이 되어버린 것이다.?BR>타향살이의 외로움속에서 갖은 고생을같이하던 그의 부인이 생활이 웬만큼 자리잡을 무렵 과로로 쓰러져 병상에 눕게 되었다.?구월산인 기록을 찾아보던 그는 ‘유수지정 문우청산(流水之情 問于靑山)'이란 구절을 접하게 되나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던 김사장은 부인이 죽고나서야 그 뜻을 깨우쳤다고 한다.
평양의 화려했던 젊은 날들은 물론, 힘겨웠던 서울생활속에서도 아무런 내색없이 곁에 있어준 아내가 그리워 질 때마다 그는 부인의 묘소를 찾는다고 한다.?
화륜선같은 욕심으로 좀더 어쩌지 못해 안달하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자신에게서 ‘움직일 運'字 운명’의 기구함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