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르고 일만 하며 살다보니 생일을 차려 먹는다거나 그런것에 거창하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는 나중에 사위 얻고 며느리 얻으면 그때 얻어먹자고 하며 넘겼고 아이들 한테는 너희들 낳느라고 내가 고생했으니 선물은 내가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축하식 한번을 안해주었습니다. 그랬는데도 식구들 모두가 전혀 슬퍼하거나 노하지를 않아서 아직도 우리집은 기념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헌데 작년이었습니다. 이렇게 아카시아와 감자꽃이 피어나고 밤이면 개구리가 울어대는 6월초 제 생일 이브날이었습니다. 서울의 제일 끝자락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서 대학생이 된 딸아이를 보내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가보질 못했었습니다. 어쩌다 전화를 하면 딸아이는 “엄마는 내가 애낳고 살어도 모를겨. 뭘 믿고 한번도 안 올까?”하며 식당일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에 원망 반, 이해 반이 섞인 말투로 전화를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쯤 TV에서 혼전동거에 대한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식당 정기휴일도 됐고 딸아이가 TV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남자를 데려다 사는 건 아닐까 해서 연락도 없이 서울로 향했습니다.

딸아이의 집에 도착했는데 갑작스런 저의 방문에 딸아이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고 잠시후 “엄마, 나 불신검문 나왔지?”하면서 그때서야 사태파악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다고 하고 방안을 둘러보니 책상 옆에 작은 허브화분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여자방답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고 잘지내고 있었습니다.

우린 나가서 저녁도 사먹고 쇼핑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딸아이의 방으로 들어왔는데 그래도 할 얘기가 많아 1부는 수다로, 2부는 걱정섞인 잔소리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이 되었기에 생태찌개라도 끓여서 밥을 해줘야지 생각하고 수퍼를 가려는데 “엄마, 오늘이 엄마 생일이잖아. 내가 생일상 차려드릴께. 오늘은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마”하기에 “그래 좀 차려봐라”하고는 내심 기대를 하였습니다.

잠시후 무얼 사가지고 왔는지 덜거덕 덜거덕 준비하던 딸아이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방에다 설치하더니 냄비에 물을 붓고는 수퍼에서 사온 간단하게 끓여 먹게 되어있는 일회용 미역국을 끓이더라구요. 그리고 사온 김밥 한 도시락과 참외, 방울토마토를 펼쳐놓으며 히죽 웃더니 “외할머니가 엄마 낳으시느라 고생하셨으니 엄마도 외할머니께 선물 사 드리고 오늘은 이걸로 드슈” 하잖겠습니까. 저는 “너, 시집가서 시어머님 생신에도 이렇게 할래?”하였더니 “김밥 좋아하신다면...”하면서 빨리 먹으라고 하기에 먹어봤더니 그것도 맛있더라구요.

저는 정말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잊혀지지 않을 마흔네번째 생일상을 받고는 행복했는데 올해는 어땠는지 아세요. 저녁때 남편이 쇠고기 봉지를 내밀며 “내일이 당신 생일이잖어. 아침에 미역국이나 끓여”하더라구요.

저는 일이 다 끝난 후 그것을 가스에 올려놓고 TV를 보다가 잠시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나서 방문을 열어보니 국솥이 빨갛게 불이 붙었고 탄 냄새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생일이구 뭐구 남편한테 쫓겨날 뻔했고 작년처럼 김밥은 없었지만 마트에 가서 일회용 미역국을 사다 끓여먹고 생일을 보냈답니다.

내년에는 또 딸아이 집으로 가서 맘 편하게 얻어 먹어야할까 봅니다.

※남편과 함께 송악면 중흥리에서 중식집 ‘금자탑’을 2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풋풋하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길 즐긴다. 대학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