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말에 안도하는 아이들

요정이 되고 싶어 하는 못난이 악마 야코는 전혀 악마답지 못합니다. 악마라면 당연히 사람의 마음을 악하게 유도해야 하는데, 마음 약한 야코는 악마의 임무를 해내지 못해요. 그래서 번번이 무시우리라는 감독관에게 끔찍하리만큼 혼이 납니다. 이 악마답지 못한 야코의 인물 설정은 처음엔 다소 엉뚱하지만 야코가 악마에서 요정이 되기까지 모험을 헤쳐 나갈 때 그 엉뚱함은 흥미로 전환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동화를 읽어 주었을 때의 반응 역시 “엄마, 악마도 야코처럼 착한 악마가 있어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천사도 아닌데” 아이들은 흑백 논리가 분명한데, 그 논리가 타당하지 않을 때 혼란을 느낍니다. 어른처럼 복잡하지도 이중적이지도 않지요. 천사나 요정, 악마에 대한 아이들의 순수한 논리를 야코가 어떻게 풀어줄지 궁금해집니다.

숲 속에 버섯같이 생긴 조그만 집에 사는 악마 사형제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에 모습도 가지가지 기괴한데 사형제 중 유독 야코만이 악마답지 않은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어요. 거기에 대조적인 무시우리의 끔찍한 모습은 이야기에 극적인 효과를 더해 줍니다. 하루에 한번, 밤 12시에 나쁜 일을 얼마나 했는지 감독관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데 야코는 마음이 약해 사람들 양심을 빼앗는 일을 하지 못해서 무시우리에게 무섭도록 혼이 납니다. 악마들의 이야기 중 아이들이 솔깃해 하는 부분은 ‘양심의 구슬’입니다. 아이들은 위험하고 짖궂은 장난에 대한 조심이나 편견이 없어요. 소위 어른이 말하는 좋지 않은 행동에 대해 직접적인 교훈보다 ‘양심의 구슬’은 훨씬 설득력이 있지요.

작가는 양심의 구슬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로 하여금 선한 의지를 지니도록 유도합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꽃과 노래를 좋아하며 동정심이 많은 야코는 도저히 악마 노릇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악마 감독관을 피해 멀리 달아나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 나쁜 일을 한 가지라도 하지 않으면 악마의 학교에 보낸다는 협박을 받고 고민하는 야코에게 다람쥐 미찌가 요정의 나라로 도망갈 것을 제의합니다. 악마가 요정의 나라에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못난이 악마 야코’ 는 이야기 요소마다 알맞은 복선과 등장인물의 배치, 상상을 이어주는 탄력 있는 전환으로, 갈수록 탄탄한 재미를 더해 줍니다.

결국 악마가 될 수 없었던 야코는 진달래 숲에 사는 요정 링기리티의 기지로 위험에서 벗어나 멀고 먼 남쪽 요정의 나라로 떠나게 됩니다.

이듬해 봄, 파란 지붕 집 소녀의 노래가 들리는 꽃밭에 한 요정이 나타납니다. 등에 있던 박쥐날개가 잠자리 날개로 변한 요정을 보면서 아이들은 마치 자신이 요정이 된 듯 한 행복감에 빠집니다. 다분히 성경적인 요소가 있고 야코가 요정으로 다시 태어나는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아이들은 행복한 결말에 만족감과 안도를 느낍니다.

책을 읽는 것은 아이들이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항로중의 하나입니다.

책을 통해 무한한 미지의 세계를 체험하고 삶 속에서 지혜롭게 터득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그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운데 학년 이하

김미영 | 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