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밀려오는 봄의 여신의 미소에 주춤하니 다시 봄기운이 완연하다.

봄은 누구에게나 가슴 벅찬 소망의 계절임이 틀임 없다. 허허벌판에 파릇파릇 새싹은 돋아나고, 모든 만물이 인간에게 새롭게 시작을 알리며 자기 성장을 계속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자연 속에서 성장을 배우며, 자기가 속한 사회 속에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을 갈망하며 성장하고자 노력한다.

인간이 성장하고자 하는 그 근본적인 시작은 어디인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간이 영혼과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의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은 항시 모든 우주를 포함하고자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한정된 시간으로 채워진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한 불완전한 자기 자각으로부터 완전하게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며,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출발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은 학교라는 틀을 발명하고 일정기간 교육을 받지만 인간의 영혼은 죽을 때까지 배움이라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학교교육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배움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의 틀을 가지고 학교교육이 끝나면 일년이 지나가도 양서 한 권 읽어보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대개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성장이 멈춰진다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이들이 성장으로 나아간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용기뿐이다.

그것이 개인에 국한될 때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기 쉽지만 그것이 하나의 단체나 국가가 될 때 길을 모르는 그들은 좌고우면(左顧右眄) 하다 결국은 퇴보의 길을 걷게 된다.

광범위한 인문적 교양을 쌓아야....

대부분 옛날의 선현들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간 분들이다. 오죽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강했으면 공자라는 분도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夕死可矣!)라는 말을 남겼을까. 우리가 그 정도로 배움을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배움 없는 성장이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현실 속에서 실현된 한 사람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단지 그 사람의 외적으로 나타난 재산이나 권력, 사회적인 인기도를 보고 그 사람의 성장을 측정하고 평가한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육과 우리시대의 지향점은 모두 거기에 있다. 그것이 성장의 꼭지점이고 성장의 열매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과소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체적인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성장했다는 자들이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져 가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화려한 성장의 이면 속에는 정신과 마음의 지평을 넓히지 못하는 역량의 부족에 기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정신과 마음의 지평이란 사랑과, 선과 악을 분별하는 의로운 마음, 그리고 절제하는 영성(靈性)이라고 본다.

그러한 영성의 확장 없는 성장이란 자칫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고 물거품과 같을 수 있다. 그러한 영성의 확장에는 광범위한 인문적 교양을 쌓아야 하며 꾸준히 학습하고 기록하는 학습태도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건전한 영성이 깃드는 건강한 육신을 위하여, 꾸준한 운동도 필요하고 늘 새로운 만남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며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진정한 성장을 위한 터닦음이 아닌가, 새로운 봄을 맞으면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