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웰빙을 꿈꾼다. 진정한 웰빙! 진정으로 잘 살기를 꿈꾼다면 웰다잉, 즉 잘 죽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웰빙(well-being)이란 웰다잉(well-dying)까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꾼다면 “삶 그리고 마무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무서워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피하고 만다. 왜 그러는 것일까? 우리의 생활이 너무 과학적, 경제적, 이기적으로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는 좀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고 잘 산다면 내일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논어(論語)중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침에 도를 듣고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우리가 평소에 느끼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의 삶은 매일 매 순간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그 까닭은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평소 우리의 태도에 비추어 보아도 현명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아기를 출산하려고 하면 출산 전에 많은 준비를 한다. 결혼하려고 하면 결혼 전에 또 <혼수>라는 이름으로 많은 준비를 한다. 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준비를 하고 심지어 예행연습까지 한다.
그런데 일생에 단 한번 뿐인 마지막 죽음에 관해서는 철저할 만큼 준비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도 현명한 노인들은 준비를 할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며 하지못한 말들을 유서나 유언으로 남겨놓는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언제, 어떻게 올지 몰랐던 것과 같다. 죽음은 참으로 예측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막 단란한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가 있다. 어느날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다녀올께”라고 다정하게 인사하고 출근했다.
그러나 그 남편은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그의 죽음을 예견하지 않았지만 죽음은 바로 그 순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고만다.
감히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외람된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할 것이다. 그 하나로 맨 먼저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에 소개된 부휴선사의 임종게(臨終偈)를 소개하려고 한다.
환상의 바다에 노닐기
칠십여 년.
오늘 아침
이 몸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네.
텅 비고 고요해서
아무것도 없으니.
보리니 생사니 떠들지 말게.
선진국의 초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죽음준비 교육>시간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피하기만 하는데 그들이 이렇게 일찍 죽음준비교육을 하는 것은 또 어떤 이유일까? 이쯤해서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죽음에 대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면 일단 성공이다.
다음은 행복한 마무리, 즉 행복한 죽음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행복한 죽음이란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모두 이런 아름다움의 극치를 향해서 달려가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작년 4월, 천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말을 되새겨 본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잘 살았으면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 천천히 이런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