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이야기
감옥 안에서 일어난 크리스마스 깜짝이벤트
사형수들과 30년 동안 나누었던 사랑의 기록인 <하루가 소중했던 사람들>의 저자 김혜원님의 이야기 중에서 오늘은 박철웅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교도소 안에서 사형수 박철웅이 각본을 쓰고 연출과 주연까지 맡은 놀라운 축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1980년 교도소안에서 성탄 전야제의 모습입니다. 총감독인 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4개동의 40여개 방 재소자들과 그는 미리 내통을 하였습니다. 각 방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 이브 밤 9시를 기해 각각의 감방에서 일제히 화장실 쪽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이벤트였습니다. 화장실에는 환기통이 있어 소리가 밖으로 울려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해 12월24일 밤 9시- 화장실 환기통에서 박철웅의 우렁찬 기도 소리가 울려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사람들은 동시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롤을 합창했지요. 화장실 쇠창틀에 머리를 대고 밖을 향해 힘껏 외친 그의 기도 소리와 합창 소리에 교도소의 밤하늘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밤 7시만 되면 잠이 오든 오지 않든 모든 재소자가 두 장의 담요 중에서 한 장은 깔고 한 장은 덮고 자리에 누워야 하는 것이 그곳의 엄한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유와 통제의 세계에서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그 날의 성탄 예배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의 외침이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고 워낙 감동적이어서 교도관들도 제재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더욱 놀라운 일을 벌였습니다. 사형수라 기각될 것이 뻔한 데도 상고를 한 것입니다. 그 까닭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대법원 상고는 기각되어 다시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죽기 전에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서둘렀습니다. 그 일이란 다름 아닌, 좀 더 많은 재소자들에게 깨달음의 기쁨을 전하고 자신의 참회록을 집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황홀한 죽음’의 꿈을 꾸면서 한편으로는 교도관들에게 처형장의 모습과 처형 절차 등에 대해서 여러 번 물어보아 사형장에 대한 예비지식을 미리 알아 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날이 닥치면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라며 집행 예정일을 미리 귀띔해 달라는 은밀한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를 연출하러간 교도관이 “오늘은 하느님 앞으로 가는 날입니다”라고 알려주었는데 이런 말을 교도관이 미리 해 준 것은 유례가 없는 특례였다고 합니다. 그가 교도관들에게 얼마나 큰 신뢰와 정을 쌓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얼굴빛 하나 변함없이 태연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소지품을 정리한 뒤 감방 동료들과 작별의 기도를 나눈 후 교도관들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환한 얼굴 그대로 밧줄을 받았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인생의 밑바닥, 철저히 무소유가 되어 버린 빈 들판에 더욱 활짝 피어나는 꽃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박철웅이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님. 언젠가 제가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거든 슬퍼하지 말아 주세요. 저 숲 속에, 흩어져 뒹구는 낙엽 속에, 파란 하늘 속에, 그리고 사랑을 아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 내가 살아 있음을, 누님 속에서 내가 속삭일 테니까요. 바람이 있는 곳에 언제나 나는 거기에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