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노년에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오늘은 이런 문제.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노년의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환자들이 편안하게 자기답게 이 세상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흔히 병원에서 중환자실의 처참한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완쾌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는 어떻습니까. 결국은 그런 상태에서, 가족과 따뜻한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죽고 맙니다. 우리는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런 처참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편안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사람답게,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우리가 분명하게 구분하여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는 ‘존엄사(尊嚴死)’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먼저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률에 관해서 1976년 미국에서 인정했습니다. 1980년에는 로마 교황청에서 인정하였습니다. 1994년에는 미국 개신교에서 존엄사는 찬성하고 안락사는 반대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대만에서 자연사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말기암으로 죽어가는 노년의 환자를 죽는 날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요?

먼저 환자의 의사(뜻)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환자의 뜻보다는 먼저 경제적인 문제가 우선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의사에게 의존합니다. 이 두가지 점이 외국과 다른 점입니다.

여기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의료현장에서 환자가 치료를 통해 더 이상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없는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질병을 치유해 주기를 바라는 정신과 육체를 지닌 전체로서의 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환자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의사가 치료의 무의미함, 즉 치료가 더 이상 환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결정할 때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살려달라고 매달립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비참한 상태에서 죽어가는 ‘존엄한 죽음’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가족들 또한 그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주에 또다시 이 문제를 이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주십시오.

합덕대건노인대학  ☎.363-8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