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채비로 김장 손길이 매우 바빠졌다. 부지런한 주부들은 남은 푸성귀를 매달아 ‘시래기’로 말려 된장국거리 까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은 김장담고 남는 푸성귀까지 알뜰살뜰히 아낀 살림의 지혜를 배우며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전국 일간지에 「눈먼 돈」이란 제하의 글이 실렸다. 내용은 옛 조상들의 돈에 관한 가르침이었다. 절대 깨끗한 돈을 벌어야 되며, 있을 때 아껴 써야 되고, 반드시 돈에도 주인이 있는 것이니 넘보지 말 것이며 국민의 혈세는 더욱 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훈계적 내용들을 소개했다. 세금을 가볍게 여기고 낭비하면 백성이 가난해지고 국민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도덕한 사람들이 생겨나는 법이라고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복권이나 부정한 방법 등으로 돈 벼락을 맞은 사람들의 인생극은 대부분 불행하게 끝을 낸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나랏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본 사람이 먼저 마구 쓰려는 사고가 만연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어서이다.
지난 정부의 예를 살펴보자. 전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5년 후 김대중 대통령에게 53조원 가량의 나랏빚과 IMF를 안겨주고 다음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게 133조원의 빚을 넘겨주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의 대통령에게 300조원이 넘는 눈덩이 빚을 인계했으니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저 5년 임기 동안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며 나랏돈을 먼저 쓰고 보자는 정부가 아니었던가? 국민의 정부, 서민의 정부가 이랬다.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빚은 결국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참으로 무책임한 위정자들의 작태였다.
구한말 조선 왕조의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일본에 혼비를 구걸하고, 전라도 ‘하의도 섬’을 담보했던 사실이 있었다. 그 당시 이 왕실의 빚을 갚기 위해 대신들이나 선비들도 아닌 사회적 신분이 가장 낮았던 민초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고 조선의 주부들은 숟가락 절미운동과, 기독교계에서는 금연, 금주운동을 파급시켜 결국 백성들이 나랏빚을 갚았던 역사도 알고 있다. 더욱이 어떻게 거두어들인 혈세가 이처럼 눈먼 돈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흥청망청, 호화, 사치 축제행사가 극성이다. 벌려놓으면 모두가 돈이다. 물론 그렇다고 쓰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이름값도 못하는 기상천외한 명목으로 먹고 마시면서 과시하고 부풀리고, 일회성 깜짝쇼로 낭비하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관변단체들과 중복성 위원회는 보조금과 수당에 매달리고 주민들은 행사에 동원되고, 공직자들은 연일 행사장이 근무지가 되고 있는 꼴을 자주 보면서 이제 갈 때까지 가는구나 하는 생각들을 모든 지역 주민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각 읍면의 지도자들도 이제는 너무 심하다는 푸념들이다. 주어진 예산들을 알뜰히 아껴 쓰는 지도자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으로도 명성을 얻었지만 약 5조원 가량의 시민의 빚을 임기 내 3조원 넘게 줄인데에서 서울 시민들은 더욱 박수를 보내고 나랏일을 맡기는데 점수를 더 주었던 시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감시기능도, 비판 기능도 모두 상실되는 것이 아닌가? 동조하고 함께 나누어 쓰는 일에 몰두하는 형상으로 비춰지고 있으니 말이다.
3류 가수 한사람의 노래 값이 3천 평 농사를 짓는 농부의 연봉과 같다면 놀라겠는가? 이렇게 1년간 대회와 축제로 흥청망청 써버리는 예산은 얼마나 될까? 놀라운 답이 나올 것이다.
영세 상인들이나 불우계층의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배고픔과 싸우고 있다. 학교 급식비도 충당 못하는 어린 학생들은 하늘이 야속할 뿐일 것이다. 쌀 한 톨의 값을 구하기 위해 농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