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시작한 ‘경로당을 가다’가 농번기로 넘어오면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70, 80대 어르신들도 평생 업으로 삼았던 농사에서 손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촌에 젊은이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일찌감치 논과 밭을 둘러보고 햇볕이 강렬해지는 한 낮에는 경로당에 모여 한 숨을 돌리고 농사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룡삼거리 검문소를 기억하십니까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다는 오후 2시, 구룡삼거리 정류소 앞 나무그늘 아래 어르신들이 모여 막걸리 한 사발에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경로당보다 나무그늘 아래가 시원해 여름이면 휴게소 앞이 어르신들의 경로당이 된다.
“지금이야 동네 노인네들이 모여 노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여기도 유명했지. 서산으로 가는 대로가 생기기 전까지 모두 이 길로 서산을 다녔어. 차들도 숱하게 지나다녔고 버스 승객들도 많았지. 구룡삼거리 정류소는 물론이고 고개 아래에 있는 구룡휴게소도 참 잘 됐지~”
어르신들은 “구룡검문소도 바로 여기 있었다”며 버스정류소 바로 옆 공중전화부스를 가리켰다.
“여기서 매일 같이 검문을 했었어. 6.25를 겪고 난 뒤에 치안 유지를 한다며 만들었던 게 최근 서산으로 가는 고가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검문소가 있었어. 음주단속에 걸린 사람들 일화도 숱하지. 정류소 옆에 검문소가 있었고 경찰과 의경들의 사무실 겸 숙소가 지금도 마을회관 뒤에 그대로 남아 있지.”
서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구룡동은 예부터 서산과 당진을 잇는 길목이었다. 덕분에 구룡삼거리에는 길을 건너다니기가 겁날 정도로 차들의 통행량이 많았다는 게 어르신들의 기억이다. 하지만 서산을 잇는 32번 국도에 자동차전용도로가 신설되면서 647번 지방도의 이용량이 줄었다. 647번 지방도에서 서산과 당진의 경계를 이룬 구룡고개 아래에 위치한 구룡휴게소는 한때 결혼식이 열릴 만큼 성황을 이뤘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구렁이 같다? 아홉 마리 용머리?
구룡동이라는 지명에 얽힌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마을 지형이 ‘구렁이 같이 생겼다’ 하여 구렁이, 구룡이라 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며 아홉 마리의 용머리가 모인 형국이라는 설도 있다. 또 용의 형국을 한 명당이 모두 아홉 곳이나 있기 때문에 구룡동이라 이름 붙었다는 주장도 있다. 구룡리는 아홉 구(九)자와 용 용(龍)자를 사용한다.
구룡동 주민들은 마을을 자연부락별로 크게 도동마을, 도곡마을, 원구룡으로 나눠 부른다. 1, 2반이 속한 도동은 옛날에 옹기점이 있던 곳으로 점말, 점촌, 뒷골 등으로 불리었다. 도곡은 3, 4반이 속해있으며 뒷골이 되골, 도골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도곡 이외에도 뒷구룡, 후구룡, 후곡 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5, 6반이 속한 원구룡은 서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원구룡에는 남원 양씨가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도곡마을에는 수원 백씨가 많이 살았는데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다.
오랜 가뭄의 농촌 현실을 반영하듯 어르신들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물’이야기였다.
“구룡동은 저수지나 하천같은 수원지가 없어서 늘 고생이야. 인근 마을인 면천 삼웅리나 당진 사기소리만 해도 삽교천 물이 들어오는데 구룡동은 수로가 없어. 삼웅리에서 쓰고 남은 물이 내려와야만 사용할 수가 있는 형편이지. 그렇다보니 요즘에 원구룡은 식수도 모자랄 만큼 물이 귀하지.”
산이 많은 구룡동은 농사처도 많지 않다. 주민들은 예부터 벼농사를 주 소득원으로 살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담배와 꽈리고추를 심는 주민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일손 부족으로 겨우 2~3집 정도만 짓고 있다고.
구룡동에는 아홉 개의 용머리가 모였다는 설에서도 알 수 있듯 산이 많다. 그 중에서도 대운산리에 걸쳐 있는 칼베산과 사기소리, 면천에 이어져 있는 이배산, 서산과 이어져 있는 용주봉이 유명하다. 동학농민운동이 있었을때 일본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승전목도 구룡동에 속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