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에 쓰는 건지 아시나~ 실제 본 적은 있수?”

이영구(65) 씨가 1/10 크기로 축소해 놓은 달구지며 쟁기를 꺼내 놓고 물었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몰러~ 마흔은 넘어야 알아보지. 요것만 꺼내 놓으면 옛날 추억들을 죄다 풀어 놓더라고. 마차를 끌면서 짐을 날라주고 돈을 꽤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부터 코 흘리개 시절에 아부지 따라 소 달구지를 몰았다는 이야기까지….”

이영구 씨는 이제 중년들의 기억 속에나마 남아있는 옛 농기구들을 다시 만들며 우리네 농촌의 역사와 추억을 복원하고 있다. 찾는 이 많지 않고 돈벌이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는 추운 겨울에도 대장간을 지킨다. 지금 내가 아니면, 대장간의 명맥이 끊길 거라는 우려와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쇠를 다루는 기술에 대한 애착이 낳은 ‘장인’ 정신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황해대장간”

이영구 씨는 신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평시장에서 대장간을 하던 아버지에게 ‘쇠 다루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었다. 날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쇠를 녹여 호미며 낫 같은 농기구를 만들었다. 장날이면 사람들이 대장간 앞에 줄을 섰다. 손재주 좋던 아버지는 대장간 일을 하며 마차며 쟁기도 만들었다.

“그때는 도로가 포장된 곳이 거의 업었지. 죄다 자갈길이었어. 집마다 달구지를 썼지. 짐도 나르고 농사 지은 쌀이며 볏짚도 실어 날랐어.”

이씨가 23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대장간을 맡았다. ‘황해대장간’이라고 간판도 걸었다. 달구지와 쟁기, 편자도 이영구씨가 만들었다. 하지만 곧 타이어가 등장했다. 나무를 깎아 바퀴에 쇠를 둘러쓰던 달구지는 타이어에 밀려 났다. 196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 씨도 쇠 바퀴 대신 타이어 바퀴가 달린 마차를 만들었다. 이후 1975년경에 경운기가 나오면서 마차를 찾는 이도 사라졌다. 이 씨는 더 이상 마차를 만들지 않았다. 경운기가 나온 뒤에도 이 씨의 황해대장간은 한동안 문을 열었다. 하지만 곧 공장에서 찍어내는 농기구를 파는 철물점이 들어섰고 귀하던 철도 흔해졌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지 30년 만에 황해대장간 문을 닫았지. 그때 참 많이 힘들었어.”

이후 정육점, 식당을 하며 18년이 흘렀고 2005년 6월 이 씨는 다시 ‘쇠’를 만지며 살기로 결심했다. 중학생 때부터 이 씨에게 대장간 일을 배워 기능전수자가 된 제자 이은철 씨의 권유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에서 자신으로 이어져 온 대장간이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장간 체험장 만들어졌으면”

그는 마차와 쟁기를 복원한다. 장식용 작품으로 작게 만들지만 질기고 단단해 소가 끌고 다니기에 제격이었던 아카시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다. 나무를 깎고 쇠를 녹여 바퀴에 두른다. 마차 곳곳에 쓰이는 작은 부속물도 직접 쇠를 녹여 만든다.

간간이 기지시줄다리기축제나 울산 쇠붙이 축제, 김해 가야전 축제 등에 초청돼 옛 대장간 모습을 재현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신평면에 사는 다문화가족 30여명을 초청해 전통방식으로 농기구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체험교육도 했다. 2010년 6월에는 숭례문 복원공사 현장에서 전국서 모인 장인들과 함께 전통 철물 제작과정을 시연하기도 했다.

그는 고향 당진에서 대장간을 재현해 전통방식으로 철을 녹여 추억 속으로 사라진 마차와 쟁기 같은 농기구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지자체에서 전통 철물 제작에 대한 가치를 알아주어 작은 대장간 체험공간을 마련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영구 씨의 대장간은 신평 금천1리 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해 있다. 문의는 010-9112-6117로 하면 된다.